"판교 아닌 강릉서 일하면 어때?" 출퇴근 사라지는 IT 기업들

원격근무·자유출퇴근 뉴노멀 확산 "근무 유연해야 우수한 인재 온다" 코로나 후에도 재택근무 제도화 주8시간만 내근 등 근로법칙 격변 네이버 주 2회 출근, 카카오 고민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출·퇴근이 사라지고 있다. IT 기업이 밀집한 판교테크노밸리를 중심으로 원격근무를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촉발된 원격근무가 IT기업 취업·근로의 조건을 뿌리째 흔드는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될지 관심을 끈다.
빨·노·초 신호 따라 원격·출근 결정
‘미르의 전설’을 개발한 판교 소재 게임사 위메이드는 지난 한 달간 새로운 근무체계인 ‘시프트(SHIFT·Stay Home Instead Full Time)’ 시범 평가를 진행했다. 시프트는 근무방식을 레드·옐로우·그린 3단계로 나누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전환하는 시스템이다. 레드 시프트는 전염병 확산 우려가 커진 비상상황을 말한다. 100% 원격근무한다. 옐로우는 지금처럼 지속적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원격근무를 하되 업무 상황에 따라 15~20%가량 직원은 회사에 나와도 되는 단계다. 그린은 전염병 위험이 없는 상태로 자유롭게 회사에 나와 일해도 되는 단계를 말한다. 미르2 사업팀 소속 직원 35명은 지난 한 달간 이 시스템에 맞춰 매일 아침 회사 홈페이지에서 그날의 시프트 단계를 확인후 일할 곳을 정했다.
지난 달 8일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위메이드 본사 1층에 설치된 근무시스템 현황 전광판. 레드 시프트는 본사 핵심인력만 제외하고는 전원 재택근무하는 단계다. [사진 위메이드]
송모헌 위메이드 사업부문장은 “야구에서 우타자·좌타자냐에 따라 수비 위치를 바꾸는 것처럼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근무형태를 유연하게 바꾸자는 시스템”이라며 “언젠가 코로나19가 종식돼도 직원들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협업할 수 있도록, 이참에 일하는 방식을 완전히 전환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위메이드는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에 있는 본사 1층을 비웠다. ‘고정석’을 없애고 시프트 단계에 따라 회사로 출근한 직원들이 일할 ‘자유석’을 만들기 위해서다. 인사 평가 시스템도 ‘근태’가 아닌 목표 달성 여부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중이다. 또 그동안 보안 우려 때문에 회사 밖에선 아예 할 수 없는 일로 분류됐던 코딩을 포함해 모든 업무를 회사 밖에서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클라우드 기반 업무 시스템도 도입했다. 이 회사는 코로나19 2차 팬데믹(대유행)이 우려되는 오는 11월까지 이 시스템을 700여명 전 직원(자회사 포함)에게 적용하는 게 목표다.
회사 시스템을 뜯어고치는 이유에 대해 위메이드는 ‘인재확보’를 위한 목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송모헌 부문장은 “채용 모집공고에 ‘본사 소재지 출퇴근 가능한 분’이라고 쓰면 더 이상 인재를 뽑기 어려운 시대가 올 것”이라며 “창의적 콘텐트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업무성과를 극대화할 환경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판교가 아닌 강릉이나 부산에서도 일할 수 있어야 한다”며 “코로나19를 계기로 시공간의 경계 밖에 있던 인재를 뽑기 위해 선제적으로 근무 형태를 바꾸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메이드의 근무시스템 이미지. 레드(빨간색)은 전원 재택, 옐로우(노란색)은 15~20% 사무실 출근, 그린(초록색)은 자유롭게 사무실, 재택 근무를 오갈 수 있는 단계다. [사진 위메이드]사진 위메이드]
주 8시간만 사무실 출근
위메이드뿐만이 아니다. 지난 1일 공식 출범한 NHN의 기술전문 법인 NHN 토스트는 ‘오피스 프리’ 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120명 규모인 이 회사 직원들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4시간씩 총 8시간만 회사에 나오면 된다. 나머지 화·수·금요일은 전면 원격근무다. 현재 120여 명인 직원이 이렇게 일하고 있다. 또 ‘퍼플타임제’를 통해 근무 시간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하루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오늘 10시간 일했다면 내일은 6시간만 일하면 된다.
NHN 관계자는 “개발자들이 원하는 근무환경이나 문화를 최대한 맞춰주기 위해 근무형태를 바꿨다”며 “유능한 개발자와 함께 일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어 “상반기에 코로나19 때문에 전원 재택근무를 시행했는데 결과를 평가해 보니 개발 조직 쪽은 오히려 프로젝트 마감 일정이 앞당겨지는 등 결과물이 더 좋았다”고 덧붙였다.
IT기업을 중심으로 코로나19로 촉발된 원격근무를 정식 근무제도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이 같은 트랜드에 IT업계 맏형 격인 네이버와 카카오까지 가세하면서 ‘출근’을 기본으로 하는 기존 근무방식은 뿌리째 흔들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디지털경제혁신연구포럼에서 “코로나19로 원격근무를 진행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이전에 해왔던 근무형태와는 다르게 이어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근무 형태·직원 간 관계 등을 조금씩 바꾸는 게 아니라, 새로운 구조가 필요하다”며 “내부적으로 토론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현재 주 2회만 사무실로 출근하는 순환근무제를 오는 24일까지 연장해서 시행 중이다.
네이버·카카오도 변화 대비
카카오는 지난 7일부터 정상 출근하는 ‘온사이트’ 체제로 전환했다. 전환 전에 직원들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조직별 설문조사, 오픈톡(화상으로 직원들이 모여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모임) 등을 거쳤는데 여기서 출근 시스템에 대한 우려 및 향후 근무방식 변화에 대한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카카오는 조직별 업무 특성 등을 고려해 다양한 근무 방식을 파일럿(시범) 형태로 시도할 계획이다.
문형남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유 출퇴근과 원격근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글로벌 트렌드가 되고 있다”며 “비대면 사회에 적합하고 업무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데다 우수 인력을 확보하는 데도 유리해 '근태'를 중시한 전통적 근무방식을 밑바닥부터 뒤흔들어 놓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