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동물, 자연이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친환경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LUSH는 탄탄한 마니아층을 가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러쉬는 비즈니스 못지않게 ‘다양성’을 실현하는 조직문화로 유명하기도 하다. 많은 기업들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러쉬만큼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가치사슬 전반에 녹아있는 조직은 드물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러쉬 코리아의 캠페이너이자 총괄이사인 폭스 님과 피플 케어 매니저 비타민 님을 모시고 러쉬가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실현하고 있는지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기업 철학부터 채용, 평가, 교육, 문화까지 아우르는 이야기를 들으며 러쉬 코리아의 내밀한 속살을 엿볼 수 있었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폭스 님은 본인을 ‘러쉬 덕후’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누군가는 영감과 아이디어를, 누군가는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러쉬의 신념서 "WE BELIEVE"
러쉬 매장을 가보면 벽면에 다양한 아이콘이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러쉬의 핵심적인 신념들이다. 폭스 님은 러쉬의 6가지 신념을 소개했다.
② FRESHST COSMETICS ONLINE (신선 기간) : 음식에 유통기한을 표기하듯이 러쉬는 제품을 가장 신선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신선 기간’을 표기한다.
③ ETHICAL BUYING (윤리적 구매) : 원재료를 구매할 때는 재배 과정에서 자연에 해를 주지는 않는지, 아동 노동이나 노동 착취가 일어나지는 않는지, 지역사회의 자립을 돕는지 등을 까다롭게 체크한다.
④ 100% VEGETARIAN (100% 식물성) : 올해 4월, 러쉬는 에그 프리 egg-free를 선언하고 달걀의 대체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완전한 비건으로 나아가고 있다. 2019년 12월 현재 전 제품의 85%가 비건 제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⑥ NAKED PACKAGING (포장을 벗다) : 러쉬는 불필요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제품 포장을 과감하게 벗긴다. 현재 제품의 52% 정도를 포장 없는 누드 라인 nude line으로 판매하고 있으며, 포장이 불가피한 경우 환경에 피해가 적은 포장재를 사용한다.
러쉬의 6가지 신념을 의미하는 로고들
러쉬의 기업 특색은 이뿐만이 아니다. 러쉬는 할인, 증정, 1+1과 같은 프로모션 행사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TV나 잡지 광고도 하지 않으며, 스타 마케팅도 하지 않는다. 러쉬는 광고 대신 캠페인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 러쉬의 캠페인 이야기는 후반부에 자세히 소개된다.
전 세계 러쉬 매장에는 두 가지 공용어가 있다. 미소 smiling와 데모잉 demoing이다. 러쉬 매장에 가면 스태프들이 커다란 볼에 물을 받아놓고 제품 사용법을 시연 demo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고객들은 데모하는 제품을 직접 만져보고 몸에 발라도 보면서 오감으로 러쉬 제품을 경험할 수 있다. 이처럼 활기찬 미소로 데모를 진행하는 러쉬의 스태프들을 러쉬 해피 피플 LUSH HAPPY PEOPLE이라고 부른다.
러쉬의 가장 큰 투자는 사람에 대한 투자다. 러쉬는 “직원은 우리의 첫 번째 고객”이라고 믿는다. 러쉬 해피 피플을 보면 러쉬의 인재상을 알 수 있다. 러쉬 해피 피플은 이런 사람들이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대신 “내가 러쉬에 필요한 이유”를 담은 100초짜리 셀프 홍보 영상으로 서류전형을 대신해봤다. 면접 날에는 강연과 웃음 치료 같은 프로그램을 준비해 지원자들을 응원했다. 면접은 각 팀의 ‘막내’들이 진행했다. 상식의 틀을 파괴하는 채용이었다.
특이한 채용이 또 있다. ‘리크루팅 파티’는 파티처럼 캐주얼한 분위기로 진행하는 면접이다. 리크루팅 파티는 실제 러쉬 매장에서 진행되는데, 면접 과정의 하나로 제품 데모를 해보기도 한다. 이를 통해 지원자가 고객을 어떻게 응대하는지, 위기 상황은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볼 수 있다.
러쉬는 일차적으로 영리 기업인 만큼 골 세팅(목표 설정)이 상당히 냉정하다. 기본적으로 SMART Goals* 툴을 사용해 골 세팅을 한다. 상부에서 탑 다운 top-down 방식으로 목표를 주는 일은 거의 없다. 스스로 각자의 목표를 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진다.
러쉬만의 독특한 평가 제도 중 하나는 일 년에 두 번 있는 ‘시상식’이다. 전국의 매장에서 10명 정도의 베스트 매니저와 한 명의 MVP 매니저를 선정해 시상한다. 본사에서는 약 150명의 직원 중 비즈니스 기여도가 우수한 2명만이 MVP 수상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수상 소감을 들어보면 모두에게 드라마가 있다. 시상식이 눈물바다가 되기도 한다. 포상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의 고생을 인정해주는 동기부여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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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RT Goals: Specific(구체적인), Measurable(측정 가능한), Attainable(달성할 수 있는), Realistic(현실적인), Time-based(시간 베이스)를 기준으로 목표를 설정하는 기법.
러쉬에는 ‘트레이너’라는 특별한 직책이 있다. 본사에는 하드 스킬 (Hard Skill) 트레이너와 소프트 스킬 (Soft Skill) 트레이너가 각각 한 명씩 있다. 하드 스킬 트레이너는 러시의 직원들이 알아야 할 기술과 지식을 교육하며, 소프트 스킬 트레이너는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시간 관리, 피드백 스킬 등 전반적인 소프트 스킬을 교육한다. 두 명의 본사 트레이너는 각 매장의 트레이너들을 트레이닝하고, 매장의 트레이너는 다시 매장의 전체 스태프를 트레이닝한다.
러쉬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기 위해 노력한다. 세계적인 흐름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다양성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하다. 러쉬 코리아는 초기부터 조직 내 다양한 소수자들에게 한결같은 응원과 지지를 보냈다. 회사가 먼저 세이프존 safe zone이 되어준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갔다.
러쉬는 “나의 의지로 선택할 수 없는 것으로 차별받는 것은 부당하다”라고 말한다. 이런 믿음으로 러쉬 코리아는 퀴어 퍼레이드에 초창기부터 참여해왔다. 기업의 이름을 내걸고 참여하는 경우도 많지는 않지만, 아예 트럭에 올라타고 행진하는 기업은 러쉬밖에 없다고 소문이 났다.
이번에는 러쉬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피플 케어 매니저 비타민 님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피플 케어 팀은 러쉬 코리아가 그리는 조직문화를 실현하기 위해 2017년 만들어졌다.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러쉬 코리아의 조직문화와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비타민 님에게 들어보았다.
러쉬 코리아는 서로 닉네임으로 호칭하는데, 닉네임은 러쉬의 제품명을 따서 짓는다. 400여 개나 되는 제품명을 편안하게 외울 수 있다는 장점은 덤이다. 오늘 거론된 폭스, 비타민, 보헤미안 모두 러쉬 제품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이것이 러쉬 코리아 조직문화의 시발점이 되었다.
할로윈이 가까워오면 러쉬 매장은 한껏 파티 분위기를 내고 고객들에게 에너지를 전달한다. 본사도 매장과 같은 무드를 가져가기 위해 할로윈 파티를 연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하지는 않는다. 다 같이 모여 음식을 먹고 코스튬 대회를 여는 정도인데, 직원들의 참여도가 엄청나다. 이처럼 소소하지만 유쾌한 이벤트를 통해 러쉬의 에너지 넘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러쉬는 비혼식을 열어주기도 한다. 본인의 선택으로 결혼을 할 수도, 비혼을 할 수도 있는데 비혼의 경우 축하받는 자리도 없고, 복지에도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제도가 비혼식이다. 러쉬에서 5년 이상 근무한 사람은 비혼식을 신청할 수 있다. 모든 동료들이 비혼식에 참여해 축하해주며 축의금도 낸다. 비혼식 후에는 허니문과 동일한 유급휴가가 주어진다. 반려동물이 있는 경우에는 양육수당처럼 매달 일정 금액의 사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가족상과 동일하게 유급휴가를 받는다.
러쉬 코리아의 조직문화에 곳곳에는 대표 보헤미안 님의 손길이 닿아 있다. 한가위 무렵이 되면 Bohemian’s Secret Garden이라는 이벤트가 열린다. 과일 사 먹는 게 쉽지 않은 1인 가구 직원들을 위해 보헤미안 님이 제철 과일을 마련하여 나누는 이벤트다. 이처럼 다양한 삶의 모습을 배려하고 응원하는 문화를 보헤미안 님부터 앞장서서 만들어간다.
Bohemian’s Secret Garden
비타민 님은 러쉬 해피 피플 자랑을 빼놓지 않았다. 2017년 수능을 앞두고 포항에서 대규모 지진이 났을 때 러쉬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수험생들에게 마음을 품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포항으로 향했다. 수능 시험이 끝나고 나오는 학생들에게 비누와 함께 응원의 마음을 나눴다. 이처럼 러쉬는 작은 것이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일단 해보자"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다시 폭스 님이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강연의 마지막은 러쉬의 캠페인 이야기다. 러쉬는 캠페인에 신념을 담는다. 폭스 님과 같은 전문 캠페이너들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러쉬의 모든 스태프들은 스스로 캠페이너라는 마인드셋을 가지고 일한다. 러쉬의 소셜 임팩트는 대부분 캠페인에 담겨 있다. 러쉬의 대표적인 캠페인 몇 가지를 소개한다.
블랙 팟 Black Pot은 러쉬의 액체형 제품에 사용하는 100% PP 소재 용기다. 러쉬 코리아는 제품 사용 후 블랙 팟 5개를 매장으로 가져오면 마스크팩을 증정하는 캠페인을 상시 진행한다. 수거된 블랙 팟은 분쇄 후 공정을 거쳐 다시 100% PP 소재의 블랙 팟으로 환생한다. 지난해 수거된 블랙 팟의 개수는 약 28만 개에 달한다.
환생하는 블랫 팟
연도 별 러쉬코리아의 블랫 팟 수거량
2017년 러쉬 프라이즈 현장
2018 러쉬 프라이즈 수상자들
러쉬는 환경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포장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고 네이키드GO NAKED 캠페인이다. 러쉬는 매년 4월 22일 지구의 날이 되면 직원들이 옷을 벗고 앞치마만 입고 거리로 나선다. 상품의 과도한 포장을 벗기자는 메시지를 담은 몸짓이다. 작년에는 보다 임팩트 있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핸드프린팅 기네스 기록에 도전하여 8시간에 4,800개의 손도장을 찍은 그림으로 기네스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토요일 하루 대부분의 매장 문을 닫고 도로에 눕는 시위를 했다. 또한 청소년 기후행동의 결석 시위에 함께 참여하여 중간고사도 포기하고 나온 학생들의 용기 있는 발걸음을 응원하기도 했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러쉬의 길거리 시위 모습
#Plastic Grab 캠페인 이후 수거한 쓰레기 양 통계
Q. 러쉬는 모든 직원들이 한 마음으로 한 목소리를 내는 게 신기해요. 어떻게 하면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같은 목소리를 내는 조직 문화를 만들 수 있나요?
소위 ‘러쉬 바이브’ 같은 게 있기는 하다. 채용 때부터 ‘러쉬 바이브’가 있는지를 본다. 채용 후에는 나름의 원칙과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교육과 트레이닝을 한다. 캠페인에 참여하게 해서 ‘러쉬 바이브’를 한껏 느끼게 하기도 한다. 러쉬 코리아가 이제 18년 됐는데, 막내분들부터 5년 차, 10년 차까지 다양한 연차가 어우러져있다. 이렇게 묵은지 라인, 신김치 라인, 겉절이 라인이 한데 모여 서로의 애환도 나누고, 함께 놀기도 하면서 좋은 시너지를 내는 것 같다.
애초에 계정에 마케팅 광고 비용이 없다. 러쉬를 자발적으로 홍보해주시는 인플루언서들에게도 해드릴 것이 없어 송구하기도 하다. 러쉬는 광고비용을 아껴 원재료를 수급하는 아프리카나 아시아 지역에 투자하거나, 풀뿌리 비영리 조직과 활동가들을 돕는 데 사용한다. 광고는 없지만 캠페인과 매장을 통해 러쉬의 진정성을 알아주시는 것 같다. 그래서 매장이 중요하다. 전국 매장의 스탭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의 홍보팀이자 마케팅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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