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발없는 새', 장국영 필견영화 7편은? : 네이버 포스트

봄이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건 벚꽃 만이 아니다. 4월 1일 만우절, 거짓말 같이 우리 곁을 떠난 장국영의 기일도 찾아온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고, 팬으로서 좋았던 이들이라면, 이날을 그냥 보내기 아쉬울 터. 추모와 그리움을 담아 그의 출연 작품을 만날 것이다. 故장국영의 17주기를 맞아 다시 우리를 ‘좋았던 시간’으로 되돌아가게 만들 그의 작품 세계를 살펴본다. 장국영의 얼굴에 서린, 이미 흘러간 시간으로 되돌아가 그 시절의 우리를 생각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홍콩 영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르는 ‘홍콩 느와르’일 것이다. 조건반사적으로, 이 장르를 언급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바로 오우삼. 꼬리를 물고 그의 영화를 이야기할 때 결국 우리를 멈춰 세우는 건 <영웅본색>이다. 사실 장국영은 느와르 영화에 자주 출연했던 배우는 아니다. 1986년 <영웅본색>에 출연하기 전, 장국영은 1978년 <홍루춘상춘>이라는 영화로 연기에 데뷔했다. 중국의 통속극 <홍루몽>을 원안으로 한 ‘사극’이었다. (이 영화를 장국영은 아주 싫어했다는 비화가 있다) 이후 <갈채> <실업생> <첫사랑>(이 작품은 국내 VOD 서비스에서도 볼 수 있다) <연분>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청춘물’에 출연했다. 오히려 장국영은 이 시기, 영화에서 보다 ‘가수’로 더 큰 성공을 누렸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영웅본색>에 출연하게 된 것. 이 작품은 오우삼에게도, 장국영에게도, 그리고 동시대의 홍콩영화에도. 일대 사건이 되었다. 오우삼은 익히 알려졌듯 홍콩 권격 액션영화의 거장 장철 감독에게 영화를 배웠다. 그리고 1975년 <철한유정>이라는 권격액션영화로 데뷔했으나 지나친 폭력묘사로 인해 상영금지를 당한 뒤, 근 10여년 간 코미디 영화를 찍었다. 그 과정을 지나 <영웅본색>에 와서야 다시 오우삼이 천착해온 세계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오우삼은 ‘의’와 ‘도’라는. 무협의 세계에 천착했다. <영웅본색>은 오우삼식 ‘무협’의 세계가 ‘조직’으로 번안된 모던 무협극에 가까웠다.
오우삼이 그린 <영웅본색>의 세계에서. 조직의 보스인 송자호(적룡)와 송자호를 형님으로 모시는 마크(주윤발)는 단선적이며 일관적인 캐릭터다. 서로에게 ‘순정’을 다하며. 함께 하는 이들에 대한 의리를 안다. 걸맞지 않는 비유일 수도 있으나 손을 씻고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간 송자호는 과거를 숨긴 ‘은둔고수’의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고 마크는 복수의 기회를 노리는 퇴락한 무사의 이미지가 입혀져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송자호의 동생이자 형사인 송자걸(장국영) 만이 ‘현대’의 얼굴을 하고 있다. 송자걸은 송자호와 대면할 때 마다 애증이 뒤섞여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동시에 ‘개인’적인 고충. 이를테면 형의 직업이 연좌제로 동생에게 작용해 누락된 ‘승진’ 같은 부분에서 울분을 토한다. 송자걸은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음을 한탄하는. 트렌치 코트 입은 무사들이 홍콩을 활보하는 기이한 무협영화에서 혼자만이 영화를 보고 있는 동시대의 관객들과 혼자 접촉하는 캐릭터다. 이때 장국영의 말갛고 다정한 얼굴은 송자걸이라는 캐릭터가 감내해야만 하는 혼란과 고통의 시간을 더욱 아프게 전달한다. 그리고, 2편에 이르러. 송자걸 역시. 무협의 세계를 살아가는 호인이 된다.
장국영 하면 언제나 생각나는 또 다른 영화는 <천녀유혼>이다. 정소동 감독의 1987년 작품인 이 영화는 홍콩 영화사를 통틀어 중요한 지점에 놓인다. 이는 SFX의 신기원을 열었기 때문. 지금 보면 때때로 어이없을 정도로 티나는 특수효과와 절망적(?) 분장에 이따금씩 실소가 터져 나오지만 당시에는 최고의 기술로 평가받았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건 바로 서극 감독이다. 그는 홍콩 느와르의 새로운 기점을 만들어낸 <영웅본색>의 제작을 맡은 이후, <천녀유혼>의 제작도 맡았다. 진보적 기술력으로 승부를 보는 듯한 이 영화의 진정한 매력은 고전 멜로 드라마를 표방한 스토리였다. 개봉 당시 한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서극은 “우리는 로맨티시즘 영화를 원했습니다. 독일에서는 그런 영화가 만들어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 같은 영화죠. <천녀유혼>은 바로 그 노선을 따르고 있습니다.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귀신 이야기. 거기엔 삶과 죽음이 반영되어 있습니다”라고 <천녀유혼>의 영화적 성격을 묘사한다. 극중 ‘반야바라밀’을 외치며 부적을 던지는 도사와 원한을 가지고 죽어간 귀신이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는 건 본 사람들은 다 안다.
<백발마녀전> <금지옥엽> <야반가성> <색정남녀> <해피 투게더> 등 장르는 다양하지만 언제나 ‘사랑’으로 귀결되는 영화에 출연한 장국영은 특히 멜로 영화에 두각을 펼친다. 그 중 한 편이 이인항 감독의 1999년도작 <성월동화>다. 이 작품은 장국영의 마지막 멜로 영화로 죽은 애인과 똑같이 생긴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된 한 여자의 이야기다. 장국영은 1인 2역으로 다정한 ‘타츠야’와 거친 ‘가보’를 연기한다. 빛과 색조를 감각적으로 쓰는 스타일리스트로 잘 알려진 감독의 연출력을 토대로, 장국영은 대내외적으로도 불안하던, 반환직후의 홍콩을 살아가는 ‘가보’를 통해 불안정하고 거친 그러나 여전히 순정한 마음을 간직한 인물을 연기한다. 어쩌면, 그 시절 홍콩이 처한 사회적 분위기와 장국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동화’는 아니었을까!
결국 우리에게 장국영은 흰색 속옷을 입고 맘보를 추는 영원한 ‘아비’일 것이다. 장국영은 왕가위와 함께한 세 편의 영화. <아비정전>과 <동사서독> <해피 투게더>를 통해 90년대의 청춘들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특히나 <아비정전>의 경우, 한국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왕가위의 데뷔작 <열혈남아>는 홍콩 느와르적 서사에, 요즘말로 하면 ‘날 것’의 느낌이 살아있는 ‘리얼리즘 액션 영화’에 가까웠다. 동시에 왕가위의 ‘인장’과도 같은 ‘스텝 프린팅’과 ‘핸드헬드’가 사용되어 스타일리쉬하고 새로운 홍콩 영화였다.
그런 데뷔작을 찍은 왕가위는 차기작에 대한 온전한 통제권과 예산을 확보한 뒤,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끝없이 사랑에 고통받는 인물들로 가득 찬 서글픈 멜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영화가 한국 중앙극장에서 상영되었을 때,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당시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다는 영화감독 류승완과 시나리오 작가 심산의 회고를 보면 ‘대량환불 사태’와 ‘극장 유리창 파손’이 언급된다. ‘싸움질’을 기대했던 수많은 관객들의 기대를 뒤로하고. 도대체 양조위가 왜 나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허망한 라스트에 이르면. ‘속았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비정전>은 시간을 견디며 살아남았다. 여전히 장국영은 ‘발 없는 새’의 이야기를 마치 실현해버린 듯한 ‘아비’의 모습으로, 영원한 ‘청춘’의 모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