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우국원. 열 개의 질문에 대하여 아홉은 대답하기 어렵다는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꽉 차 있는 생각들을 언젠가는 잘 정리된 말로 내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글 쓰는 사람에 대한 로망을 가진 작가는 평생 ‘그리는 삶’을 선택한 데에 거창한 이유 따위는 없었다고 말한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는, 자신이 캔버스에 꺼내 놓은 이야기들을 관객들이 각자의 스토리로 만들어 갖는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designpress
즉흥적이면서도 강렬한 색채로 버무린 어린아이의 낙서를 연상시키는 그림을 그려온 작가는 대부분 밑그림 없이 자유로운 무의식의 흐름을 따르며 작업한다. 책, 음악, 동화, 개인적인 경험과 유년의 기억 등 체화된 경험에서 작업의 실마리를 건져 올려 “세상 누구보다 잘 할 자신이 있는 상상”을 결합하여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도쿄 디자이너 대학Tokyo Designer Gakuin College을 졸업하고 2010년 중앙미술대전 입선, 2011년 베이징 콜 아트 레지던시Col Art Residency 경력이 있다. 살롱드에이치, 갤러리 반디트라소, 인사아트센터, 이유진 갤러리, 표화랑, 갤러리 BK, 롯데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예술의전당, 가나아트, 갤러리 아트사이드, LIG 아트 스페이스, 서울대학교 미술관, 스페이스 K 등에서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며 촘촘한 스케줄로 움직여왔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코오롱, 일심문화재단, 매일유업 등에서 소장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 코로나19로 침체된 사회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유수 페어에서 솔드아웃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020년의 끝과 2021년의 시작, 그 사이, 작가는 전시를 치르고 있다. 예전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고민해야 하는 코로나 시대에도 하루하루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출 수 없는 보통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웬만해서는 개인전에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작가를 현장으로 불러낸 12월 8일, 소공동 애비뉴엘에서 열리는 기획전 <Jeremiah was a bullfrog>가 시작된 그날, 촬영 현장에서, 우리는 우연히 한 컬렉터를 만났다. 작가를 알아본 컬렉터는 조심스레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자신이 가져간 작품 사진을 보여주고 몇 마디 나누었을까, 사진을 찍자거나 사인을 해달라는 청도 없이 가만히 자리를 떠났다. 컬렉터의 뒷모습에 담긴 수줍음이, 작가의 얼굴에서도 보였다. 우국원이라는 작가가 그림을 통해 이뤄온 소통이 어떠한 방식인가를 그날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작품 앞에 선 ‘나’를 비추고, 주변이 반영되는 흥미로운 미러 스테인리스 스틸 캔버스를 활용한 작업 앞에 선 작가. 심리적인 거울 효과를 발휘하는 새로운 형식의 캔버스는 2019년 롯데갤러리 정고은 큐레이터의 제안으로 시작된 작업이다. designpress
우국원, Good Friend, 60x80cm, stainless steel, 2020 “좋은 친구는 앞에서 찌른다.” 오스카 와일드의 한 마디를 차용해 왔다. 우국원의 그림을 통해 읽는 텍스트에 정곡을 찔릴 때가 많다.
“저는 어려서 우정에 꽤 집착했던 적이 있어요. 하지만 나이 들어갈수록 사람에게는 ‘사랑’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의리는 만들어지는 사회적인 우정이 유지될 때 생겨나잖아요. 요즘 궁금한 것이 있는데, 예를 들어 기자님은 엄마에 대한 사랑과 아들에 대한 사랑의 의미 규정이 다른가요?” 아! 이 질문 앞에서 나는 혁오가 부른 톰보이의 노랫말이 떠올랐다. ‘난 엄마가 늘 베푼 사랑에 어색해. 그래서 그런 건가 늘 어렵다니까. 잃기 두려웠던 욕심 속에도 작은 예쁨이 있지. 난 지금 행복해 그래서 불안해. 폭풍 전 바다는 늘 고요하니까. 불이 붙어 빨리 타면 안 되잖아. 나는 사랑을 응원해.’ 동양화 작가 아버지와 음악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가 여러 번 사용한 ‘태생적’이라는 단어에 생각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한 그가 왜 부단히 “내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고민을 가져왔는지도. 세상에서 대단한 주인공으로 활약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도 빛나는 한 사람으로 서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모든 사람들의 면면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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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인 다섯 공주 시리즈는 도감 형식의 시리즈 작업이네요.
가령 ‘개과 동물’로 묶이지만 각기 개성을 가진 강아지를 그린 그림에서는 ‘다양성’이라는 키워드도 읽히는데요. 그런 이유도 있었을까요?
제가 어릴 때는 만화만 해도 주인공이 여럿인 경우가 드물었어요. 저는 주인공들이 많은 만화나 영화를 좋아해서 외화를 찾아봤어요. <엑스맨>같은 작품에 재미를 느껴요. 항상 일인자인 주인공보다 그 옆에 이인자를 좋아했어요.
우국원, Brave New World -Hunting Price- Oil on Canvas 227.3x181.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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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하나를 제대로 못 그린다고 말하지만 인기 시리즈인 ‘I Hate Morning’ 시리즈만 봐도 하이퍼리얼리즘에 가까운 요소들이 눈에 띄는데요.
못 그린 그림 중에 잘 그린 것 하나를 넣으면 시선이 분산되거든요. 반대로 사람들은 헷갈려 하죠. “잘 그리네! 어라?” 이러면서 본질을 잊어요. ‘아이 헤이트 모닝’ 시리즈는 5~6년 전에 우연으로 나온 작업인데, 무작정 침대에 여자아이와 동물이 누워있는 이미지를 하늘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그려보자고 시작했어요. 연작을 이어 오며 하나하나 발전되었는데, 책이라는 요소도 그래요.
보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림 앞에서 해석의 욕구를 가져요. 명확하게 알고 싶어 해요. 단순히 말이 아닌, 심리적인 ‘동화(同化)’를 이루려는 부분에서도.
그렇더군요. 사람들이 갖는 호기심, 해석의 욕구를 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름 재미있게들 사는구나 생각해요. 저는 다른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단 한 번도 해석해보려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제가 던지는 수많은 해석의 요지들에 대하여 작정하고 찾아보면 무언가 분명 의미가 있겠지요. 저는 찾아보지 않지만, 반대로 그것을 찾아 해석한 어떤 분이 제게로 와서 얘기를 해주면 그 이유를 거꾸로 알기도 해요. 미처 몰랐던 것을 말로 설명해 주는 사람들을 통해서요. 세상에 뭐든지 이유는 있으니까요.
우국원 작가의 그림에서 발견되는 책들 가운데 다수는 ‘꿈’에 관한 텍스트이다. 작가가 오랜 시간 꽤나 열독한, ‘나’를 찾기 위하여 애썼던 시간에 머문 책들이다. 그 실마리를 붙들고 물어본다. 그가 왜 아티스트로서 살기로 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