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 ㅣ 자유기고가 한 취업준비생이 자기소개서를 보여줬다. 감자탕 점심을 먹는 중이었다. 교환학생도 다녀오고 자원봉사도 여러가지 했다. 그런데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다는 지원 동기가 모호한 거 같았다. 왜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진짜 이유가 뭐야? 청년은 한참 망설였다. “사실 제 아버지가 산업재해를 당하셔서 몸이 불편하세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또 물었다. “왜 그걸 안 써?” 청년은 돼지뼈를 발랐다. 울음을 참고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국물을 떠먹었다. 뼛조각이 여럿 쌓인 뒤에야 그가 말했다. “회사에서는 긍정적이고, 그늘 없는, 그런 빠질 데 없는 사람, ‘그럼에도’ 약자에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는 거 같아요. 약자가 아니라요.” ‘그늘이 있는 사람’으로 비칠까 불안한 마음, 그 불안을 드러낼 수 없는 마음, 그 불안을 자책하는 마음을 나는 몰랐다. 그래서 왜 솔직하지 못하냐고 물었던 거다. 맹숭맹숭한 얼굴로.
2008년 서울 상도4동 무허가촌을 취재한 적이 있다. 전셋값 100만~200만원 하는 집들이 300가구 들어찬 곳이다. 땅 주인이 철거할 테니 나가라는데 이곳에서 전세, 월세 내며 수십년 산 사람들은 갈 곳이 없었다. 내가 찾아가기 전날 아침 10시, 용역업체 직원들이 지붕을 타고 내려왔다. 그날 집 33채가 부서졌다. 막아섰던 주민들은 갈빗대가 나가고 대야에 머리를 처박혔다. 내가 도착했을 때 동네는 이미 폐허 같았다.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 집 마루에서 40대 여자가 그날 일을 설명해줬다. 나는 좀 울었는데 그 와중에 오줌이 마려웠다. “화장실 좀 써도 되냐”고 물으니 여자가 머뭇거렸다. “저 아래 대로 쪽으로 가시면 상가가 나올 거예요. 거기서… 저희 집은… 수세식이 아니라서… 보여드리기가….” 여자는 창피해하는 거 같았다. 나는 오줌을 참으며 생각했다. ‘집 화장실은 자기가 아닌데 왜 창피해하지?’ 평생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집에 살아온 나는 화장실과 나를 엮어 생각해야 했던 적이 없다. 그래서 편하게 그를 판단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오줌 마려워 짜증 난 얼굴로. 부탄에 살 때 독일인 백인 남자와 레스토랑에 간 날이다. 거기선 꽤 비싼 곳이었다. 식탁에 하얀 테이블보가 깔려 있었다. 주문한 음식을 먹고 있는데 양복을 입은 매니저가 다가와 물었다. “음식은 마음에 드시나요?” 독일 남자만 보고 물었다. 두번이나 그랬다고 나는 생각했다. 머리가 복잡했다. ‘왜 나한텐 안 묻지? 여자라서? 동양인이라서? 내가 과잉반응하고 있나?’ 내가 이 오만 생각에 골몰하는 사이, 그는 맛있게 먹었다. 오물오물 잘도 씹어 먹었다. 평온한 얼굴로. 식당에서 나오면서 내가 차별당한 것 같아 기분 나쁘다니 그가 말했다. “뭘 그렇게 복잡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해. 그냥 물어본 거뿐인데.” 나는 속이 부글부글했다. ‘너는 천진난만하게 살 수 있어 좋겠다. 너는 항상 네가 누군지 생각하지 않아도 돼서 좋겠다.’ 특권은 편안함이다. 너무 자연스러워 특권을 누리는 게 느껴지지도 않아야 일상적 특권이다. 피부색, 성별, 가난 탓에 자기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매 순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다. 타인의 시선,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는 자기 시선, 그 자기 시선을 회의하는 또 다른 자기 시선, 이 모든 시선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거다. 그 시선들의 투쟁이 일어나는 복잡한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묻는다. 그걸 왜 못 해? 왜 그렇게 꼬였어? 레스토랑에서 나오며 나는 그 백인 남자의 천진난만함이 꼴 보기 싫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감자탕집에서, 그 슬레이트 지붕 집에서, 나도 참 천진난만하게 꼴 보기 싫은 사람이었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