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물까지 챙겨주는 온라인 강의’를 내건 클래스101의 인기몰이가 심상치 않다. 직원 평균연령 28세인 스타트업이 구현하는 디자인 경영은 더욱 놀랍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로켓’이란 단어만큼 설렘을 주는 말은 없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가 과거 구글 입사 당시 에릭 슈미트 회장과 나눴던 인터뷰에서 나온 이 말은 이후 스타트업계의 금과옥조가 됐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별 볼 일 없는 벤처기업 CEO였던 슈미트 회장은 당시 이미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샌드버그에게 “로켓에 자리가 나면 좌석이 어딘지 따지지 말라”고 말했다.
금재현 디자이너가 잘나가던 유니콘기업을 나와 클래스101(이하 클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한 것도 로켓에 올라타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홍익대학교 디지털미디어디자인학과를 졸업한 금 디렉터는 지난 2001년 윤디자인연구소에서 디자이너로 첫발을 뗐다. 이후 넥슨과 네이버,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스노우를 거쳐 지난해 9월 클원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메이저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출발해 ICT 대기업, 유니콘으로 성장한 스타트업 등 디자이너로서 쌓을 수 있는 로켓 커리어를 충실히 밟아온 셈이다. 2018년 3월에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클원은 미술, 공예, 요리, 마케팅, 디자인, 비즈니스 실무 등 380여 개 다양한 온라인 강습에 준비물까지 챙겨주는 서비스로 인기몰이 중이다. 지난해 11월 기준 창업 2년 만에 누적정산액 100억원을 돌파하며 차세대 유니콘을 꿈꾸고 있다.
금 디렉터는 “기업 특유의 문화를 보면 로켓을 알아볼 수 있다”며 “클원 사무실을 처음 찾은 날부터 배달의민족 때 느꼈던 오라(Aura)를 목격했다”고 말했다. 특유의 자유로움, 그러면서도 성공을 향한 엄청난 열정과 텐션. 금 디렉터는 “그런 느낌은 배달의민족 이후 처음이었다”며 “사고 한번 제대로 칠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계약서부터 뜯어고친 이유
“홈페이지나 멋들어지게 만들려 했다면 굳이 클원에 합류하지 않았을 거예요. 단순한 상품·서비스 디자인을 넘어 기업의 브랜드를 확립하고, 나아가 기업문화까지 만들어내는 게 디자인의 힘이라 생각합니다.”
입사 직후 홈페이지 리뉴얼 대신 계약서 디자인부터 손댄 것도 기업 브랜딩 정립을 위한 첫 단추였다. 강의에 나선 크리에이터(강사)가 가장 먼저 접하는 회사 이미지가 바로 계약서라고 판단한 것. 밋밋하기 그지없던 워드파일 대신 클원의 정체성을 고민해 디자인한 새 계약서는 크리에이터는 물론 사내 MD까지 모두를 만족시켰다. 브랜딩으로 거둔 첫 번째 성과였다.
“배달의민족 초창기에도 좁은 의미의 디자인이 아닌 브랜드와 기업의 철학을 고민했어요. 거기서 얻은 결론을 크리에이티브한 방식으로 녹여낸 게 겉으로 드러난 배민의 이미지, 즉 브랜드죠.”
금 디렉터가 요즘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도 바로 클원이라는 서비스의 브랜딩이다. 창업 3년 차, 직원 평균연령 28세에 불과한 스타트업의 정체성을 구성원들과 함께 고민하고, 이를 시각화해 기업 내부와 고객에게 전달하려는 작업이다. 사무실 벽 곳곳에 붙은 포스터가 대표적이다. “스타트업의 일주일은 보통사람의 한 달이다”, “허락받는 것보다 용서받는 것이 더 쉽다”, “Done is better than Perfect” 같은 재기 발랄한 포스터 문구들은 매주 금요일 전 직원이 참여하는 타운홀미팅에서 중지를 모은 결과물이다.
“‘매일 아침 이메일 대신 To Do 리스트를 보자’는 내용을 ‘사장님 지시사항’으로 전달했다 생각해보세요. 그런 톱다운 소통은 언제나 화만 내는 사장님 얼굴만 떠오르게 할 뿐이에요. 같은 말이라도 B급 감성이 묻어난 포스터로 대신하면 누구나 씩 웃으며 받아들이게 되죠. 이전과 다른 사내 소통과 브랜딩을 디자인으로 구현한 셈이에요.”
신뢰와 공감이 담긴 디자인
금 디렉터는 배달의민족 창립 멤버로 김봉진 대표와 네이버 시절부터 함께했다. ‘배민다움’으로 통하는 독특한 기업문화도 김 대표와 금 디렉터를 비롯한 배민 디자인 조직의 성과다. 금 디렉터는 “지금도 ‘클원다움’이 무엇인지 찾고 이를 정립해 비주얼로 표현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사내에 디자인을 필요로 하는 부서나 직원을 디자이너가 먼저 찾아가고, 디자인을 통해 그들의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줘야 한다는 게 그의 업무 원칙이다.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일수록 완벽한 브랜딩보다는 하루하루, 그때그때 발 빠른 의사결정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아요. 허들을 하나씩 넘을 때마다 디자인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죠. 디자이너가 새로 입사하면 ‘회사의 효자손’이 되라고 조언하는 이유예요. 디자이너와 기획자, 마케터가 엄청나게 싸우는 경우도 많이 보는데, 이들이 사이좋게 협업해야 회사도 잘됩니다. 배달의민족이 그랬고 지금 클원도 그래요.”
클원은 디자인에 특화된 애자일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다. 초기 스타트업에선 보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 제일 먼저 접하는 메인페이지, 구체적인 서비스를 안내한 상세페이지, 결제페이지, 수강 페이지 등 고객 경험 순으로 전담 셀을 두는 방식이다. 각 셀에 디자이너와 개발자, 기획자를 따로 둔다. 홈페이지에 들어온 고객이 가장 많이 이탈하는 셀을 데이터로 찾으면 해당 셀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집중적으로 달려들어 문제를 해결한다. 이런 작업이 매일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금 디렉터는 각 셀 디자이너가 모인 가상 조직인 디자인챕터를 운용하는 책임자다.
“디자이너들끼리만 모여 일하다 보면 그들만의 세계에 갇히기 쉬워요. 반면 처음부터 현업 파트와 협업하면 자연스럽게 디자인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죠. 신뢰와 공감이 담긴 디자인이라야 작업물에 힘을 담을 수 있고, 결과물이 비주얼이든 화법이든 전사적 메시지로 통합할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브랜드의 힘이죠.”
금 디렉터가 합류하기 전만 해도 클원에는 제품·서비스 디자이너만 있었다. 그 역시 교육이라는 카테고리에 디자인이 개입할 여지가 크지 않다는 생각에 입사를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쏘카가 기존 렌트카의 낡은 이미지를 젊고 트렌디하게 바꿔놓았듯, 클원 서비스를 찾는 고객이 트렌드의 최전방에 서 있다는 이미지로 바꿔놓겠다는 목표가 새롭게 의지를 자극했다.
“힙하다는 게 뭔지, 주류 트렌드라는 게 뭔지 고민하고 있어요. 레트로가 힙하다는데 이게 진짜일까? 곰표밀가루 패딩과 참이슬 백팩 같은 뉴트로가 정답일까? 일주일에 한 번씩 토론하면서 클원이 보여주어야 할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클원의 디자인 하나하나에 우리가 정립한 기업문화와 브랜드를 녹여내야죠.”
최근 디자인 경영으로 성과를 거둔 기업이 늘어난 것도 업계에선 고무적인 일이다. 디자이너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과거와 달리 경영 전반으로 확장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금 디렉터는 “배달의민족처럼 디자인을 중시하는 스타트업이 크게 성공하면서 디자인 영역이 더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성공한 유니콘의 디자인을 보면 직관적으로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곳이 의외로 없어요. 단순히 심미적 기준만 따른 디자인은 오래 못 가죠. 기업의 경영 철학과 문화가 녹아든 디자인이 오래가고, 이런 기업일수록 성공할 확률도 높아지는 것 같아요. 브랜드란 사람으로 따지면 개개인의 성격인데, 개성 강한 사람만 살아남는 건 아니거든요.”
금 디렉터는 디자이너 출신 CEO의 본보기로 꼽히는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 조수용 카카오 대표와 함께 일한 경력이 있다. 배달의민족에선 창업 초창기부터 김 대표와 호흡을 맞췄고, 조 대표와는 짧은 기간이나마 네이버에서 함께 일했다. 금 디렉터는 배달의민족 성공 비결 역시 디자인을 통한 특유의 감성적 접근이라 분석했다. 김 대표를 비롯한 구성원 전체의 철학이 배민다움을 담은 디자인으로 구현됐고, 이것이 고객에게 시각적으로 전달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금 디렉터는 “김 대표는 처음부터 직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며 “직원들도 좋아하는 서비스와 디자인이라면 누구나 만족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직원들 염원 담은 브랜딩 만들겠다
조 대표가 네이버 디자인총괄부문장으로 일했던 당시의 짧은 만남도 디자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히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금 디렉터는 “김 대표가 자신의 경영 철학을 디자인으로 구현하는 사람이라면, 조 대표는 디자인을 활용한 비즈니스 역량이 탁월한 경영자”라고 말했다.
“제가 입사한 직후 퇴사하셔서 조 대표를 가까이서 뵌 건 아니에요. 네이버 특유의 푸른색 검색창과 분당 사옥을 디자인한 주역이지만, 조 대표가 네이버에 와서 처음 디자인한 작품은 웹사이트 제일 밑바닥 ‘바로가기 확인’ 버튼이었다고 하더군요. 기업의 디자인을 한 번에 바꾸기보다 가장 많이 접하는 부분부터 바꿔나가려 했던 거죠. 클원에 들어와 계약서 디자인부터 바꾼 것도 같은 콘셉트였죠.”
금 디렉터는 디자인 영역이 기업문화와 브랜딩을 넘어 매니지먼트까지 확장됐다고 말했다. 과거 배달의민족에서 경험했듯, 클원에서도 직원들의 염원을 담은 브랜딩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디자인이라는 수단으로 “너도 클원으로 트렌디해질 수 있어”라는 브랜딩에 성공한다면 ‘세상 모두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도록’이라는 기업 비전도 더욱 빨리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디자인이 주는 무한한 가능성이 기업 비전을 이뤄낼 첩경이 될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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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