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크리에이터] #4 한명수 : 디자이너여, 연봉과 재능을 Deal하지 말라 : 네이버 블로그

2011년 8월 12일 녹화된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당시 주제는 '한국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의 합동 강연회였다. 한명수 디자이너는 '한국 최초 억대 연봉 디자이너'로 초청되어 강연을 진행하였다
한명수 디자이너에 관한 기사를 살펴볼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몇몇 수식어가 있다. 대한민국 1세대 웹디자이너, 최고의 UX 디자이너, 비유학파 디자이너,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억대 연봉 디자이너. 많은 이들이 궁금해할 이 마지막 타이틀에 대해 한명수 디자이너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먼저 실례되는 질문에 양해 드린다. 인터넷에 ‘한명수 디자이너’를 검색하면 가장 자주 보이는 키워드가 ‘연봉 1억 원’이다. 비유학파 디자이너로써 2000년대 초반에 연봉 1억이라니, 당시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팀장급을 훨씬 상회하는 금액 아닌가?그렇다. 그리고 이 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알고 있다. 2001년도 즈음 FID라는 디자인 에이전시에 디렉터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한 잡지사에서 인터뷰를 나왔다. 1시간 정도 인터뷰를 한 뒤 나중에 발행된 기사를 보니 내 얼굴 위에 대문짝만 하게 ‘연봉 1억 원’ 이렇게 쓰여있더라. 진짜 놀랐다. 내 평생 한 번도 어디가서 ‘저 얼마 받는답니다.’하고 얘기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기사에 들어갔는지도 모르겠고 기사를 본 사람들마다 진짜 1억을 받느냐, 어떻게 하면 1억을 받을 수 있느냐고 되물어 난감하기도 했다. 너무 황당해서 해당 기자에게 따질 틈도 없었다.Q 그렇다면 진실은?사실은 맞다. 당시 FID에서 1억을 받긴 했으니까. 그렇다 해도 한 시간의 인터뷰에 이야기도 하지 않았던 1억이란 연봉만 대서특필 되었으니, 나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 정보가 어떻게 새어나가게 되었는지 추적도 해보았지만 어쩌겠나, 이미 기사는 나갔고 그것이 거짓 정보도 아닌 데.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단지, 사람들이 내가 계속해서 억대 연봉자였던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곤란했을 뿐이다. Q 속상했을 것 같다.사전 조사 중에 월간<디자인>인터뷰 기사를 보니 디자인 작업을 하기 전에 미리 가격을 책정하지 않아 돈을 받지 못한 적도 왕왕 있다고 들었는데.맞다. 난 작업을 하기 전에 ‘딜’을 하지 않는다. 내가 처음 일을 시작했던 20대 때, 똑같은 작업을 하고 어느 곳은 20만 원을 주고 어느 곳은 30만 원을 줘도 개의치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학창시절의 경험이 나를 그렇게 이끌었다. 학생이던 시절 많은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미술학원 강사를 하고 아이들이랑 데생을 했으면 편하게 앉아 제때 목돈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거기엔 나를 위한 ‘배움’이 없더라. 그래서 난 이벤트 회사 아르바이트를 다녔다. 동네 마라톤 행사나 벼룩시장 같은 작업을 맡으면 2주일 내내 현수막부터 표지판, 배포용 안내물, 기념 스티커까지 별의별 디자인 작업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받는 돈이 딱 20만 원이다. 그런데도 난 매번 시안을 7개씩 넘치도록 만들어갔다.
디자인프레스
Q 7개씩이나?왜 그렇게 많이?일단 클라이언트를 감동시키고 싶어서. 7개씩 해가면 클라이언트가 엄청 놀란다.그걸 보는 게 좋았다.뿌듯했고.두 번째로는 그 모든 작업들이 다 내 포트폴리오가 되기 때문에 일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그래서20만 원을 주건30만 원을 주건 상관없이 엄청 열심히 했다.그러자 자연스럽게 이벤트 회사 사이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한명수라고 되게 싼값에 고퀄리티 작업하는 애 있다고.그래서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계속하게 되었다.Q 2주 작업에20만 원이라니,2000년대 초반이라 생각해도 너무 적다.처음 페이가 오른 시점은 언제인가?대학교4학년 때쯤 바른손 위즈에서 바른손 캐릭터를 이용한 리플렛 디자인을 맡게 되었다.그때 대표님이 얼마를 주면 좋을지 물으시더라.난 그냥 알아서 주세요,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금액을 조율해야 한다며 거듭 물으셨다.그래서 잠시 고민하다가 기왕 물어보셨으니 크게 한 번 질러보자,결심하고 ‘저50만 원 받을 수 있나요?’라고 했다.그러자 바른손 위즈 대표가 너무 놀라더라.Q 적어서?-맞다.너무 적어서.그러더니 오히려500은 받는 게 맞다며500만 원을 주셨다.그 말에 내가 더 놀랐다.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딜하지 말라’는 것의 참 의미를.Q 딜하지 말라니,그게 무슨 뜻인지?‘딜’하는 순간 사람이 돈에 끌려다닌다는 말이다.돈이 당신을 따라다녀야지 당신이 돈을 따라다니면 그 돈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스스로 생명을 잃게 된다고 했다.이전까지 개념으로만 머물던 말이었는데 그때 작업을 통해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그리고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돈과 작업 사이에 딜을 하지 않았다.
2002년 제작한 일러스트레이터 이성표의 웹사이트. 한명수 디자이너는 2012년 월간 <디자인>과의 인터뷰에서 성취감이 컸던 프로젝트로 해당 작업을 언급하며 친구나 존경하는 선생님의 부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경우 돈을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디자인하우스
Q 그럼 1억 원을 받은 FID에서도 연봉 딜을 하지 않고 합류했나?FID대표와는 원래부터 친분이 있었다.그때 난 한창 프리랜서로 신나게 일하고 있을 때였는데FID대표가 같이 일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하더라.난 두루두루 일하기를 좋아해서 한 군데 일만 해야 하는FID작업이 재미없을 것 같았다.그러자 대표가 프리랜서 수입만큼은 맞춰주겠다며 월수입이 어느 정도인지를 묻더라.그래서 안 갈 마음 살짝 섞어 내가 버는 월수입을 슬그머니 불려 말했다.그랬더니 오히려 더 큰 금액으로 맞춰주더라.물론 그 금액이1억 원은 아니었지만 당시 나에게는 충격적일 만큼 큰 돈이었다.일도 재미있고 돈도 제때 나오니1년을 열심히 일했다.그리고1년이 지났을 때 대표가 슬쩍 와서 말하더라. ‘형,이제1억 정도는 받아야 할 것 같아’.그렇게 내 연봉이1억 원이 되었다.Q 들을수록 놀라운 금액이다.혹시 이후에 연봉이 더 올랐나?회사가2년 있다가 망했다.연봉은 커녕 이런저런 사건사고까지 생겨 나중에10개월은 무급으로 다녔다.회사가 정리되면서 나도 나오고 프롬이란 회사로 들어가게 되었다.Q 프롬에서 연봉은 어느 정도였나?2,400만 원이었다.Q 그 금액에 오케이 했나?사실 고맙긴 했지만1억이란 연봉은 내가 생각해도 비정상적으로 많은 금액이었다.프롬은 워낙 작은 회사이고 친한 형이 대표이다 보니 회사 돌아가는 상황을 훤히 알고 있었다.형이 한 달에200만 원 밖에 못 줄 것 같다는 말에 좋다고 하고 열심히 다녔다.월급이랑 상관없이 일이 너무 재밌어서 스튜디오에 살다시피 했다.이후 대표가 교수직을 겸직하게 되며 나도 회사를 떠나 이노이즈에 터를 잡았다.
2006년 6월호 월간<디자인>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을 선도하는 크리에이티브 그룹에 소개된 이노이즈. 좌측부터 홍순기 대표, 박희성 이사, 한명수 이사 한상무
Q 그리고 대기업에 스카우트 되었다.이노이즈에서 일할 때는 참 재밌게 일했던 것 같다.디자인 스튜디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칼퇴근 문화 덕에 개인 시간이 보장되는 것도 좋았고.때문에SK커뮤니케이션즈(이하SK컴즈)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을 때에도 많이 망설였다.다른 훌륭한 디자이너를 추천하기도 했고.Q 그런데도 입사를 결정했다.조직 문화가 자리 잡은 대기업이라는 부분이 부담스러웠지만 ‘싸이월드’라는 작업은 꼭 해보고 싶었다.당시의SK컴즈는2007년 상장을 준비할 만큼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으며(*당시 네이트는 엠파스와 합병하며 서비스 전체PV 수치는 포털사이트 '다음'을 앞지르기도 했다)싸이월드는 핵심 서비스인 미니홈피의 전반적 구조와 서비스 혁신을 시도할 때였다.나에게 무엇이든 자유롭게 시도하면 된다는 이야기에 입사를 결정하게 되었고, 결국 오며 가며 7년이 넘도록 일하게 되었다.
2007년 리뉴얼을 예고한 싸이월드 화면. 한명수 디자이너는 2007년 입사 후 이전까지 분리되어있던 네이트와 싸이월드를 통합 개편하는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했다 디자인하우스
Q 그럼에도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2009년 이후로는 회사도 많이 힘들어졌고 나도 많이 아팠다.나뿐 아니라 직원들도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낸 시절이 아닐까 한다.그때가 되니까 맨날 디자인 못한다고 욕만 퍼부었던 우리 디자이너들이 사람으로 보이더라.그리고 떠날 때 떠나더라도 우리 디자이너들이 제 몫은 해내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많이 독려하고 많이 알려줬다.다행히 그 친구들이 지금은 다 잘 돼서 인정받는 디자이너가 되었다.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나도 부담 없이 떠날 수 있었다.Q 갈 곳도 정하지 않고 회사를 나오면 생활이힘들어질 텐데.꽤 오래 놀았다. 7,8개월은 놀았던 거 같다.그야말로 통장에 씨가 마르더라.결국OO 은행에 마이너스 대출을 받으러 갔다.그런데 백수라고 대출을 안 해주더라!진짜 속상하고 화가 났다.내가 그동안 이 은행에 냈던 이자만 해도 얼만데!너무 화가 나지만 당장 생활을 해야겠기에 다시SK문을 두드렸다.그곳이 내 여덟 번째 직장인SK플래닛이다.Q 그야말로 우여곡절이다. SK플래닛에 다시 돌아가니 어떻던가?처음3개월은 너무 좋더라.대출도 무사히 받고 월말이 되면 월급도 들어오고.그동안 못 보냈던 아이들 방과 후 교육 보낼 돈도 생기고.그렇게 돈을 바라보며 다니고 있다가 김봉진 대표를 만나게 되었고 결국 우아한형제들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러니 김봉진 대표가 나를 구원해줬다고 보는 게 맞다.내가 재미있어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마당을 열어 준 사람이니까.Q 연봉 이야기를 다시 이어가보겠다. 프롬으로 이직하며 받았던2,400만 원.그게2006년도의 일이다.그리고 작년에 디자인 회사들의 연봉을 보니 여전히2,000~2,400만 원이더라.그것도 경력직 위주로.어디부터잘못된 걸까?이것은 누구의 잘못으로 탓하기는 어려운 문제다.그렇지만 난 선배들의 잘못이 크다고 본다.디자인 산업이 발달한 나라들을 보면 윗 선배가 열심히 나무에 열매를 키워 다음 후배들에게 나누어준다.그럼 후배들은 열매를 먹고 열심히 힘을 내서 더 많은 열매를 키워내고 또다시 다음 후배에게 나누어준다.그렇게 발전한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고도성장을 하면서 열매를 키우고 나눠줄 여력이 없었다.보고 배울 선배가 없던1세대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이 키운 열매를 직접 따먹는 수밖에 없었고,후배들은 빈 나무에 다시 열매를 맺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당연히 다음 후배에게 남겨줄 열매는 없다.결국 이런 구조가20년간 지속되었고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직군별 연봉을 대략적으로 가름할 수 있는 구인구직 사이트의 연봉정보 서비스. 디자인/설계 산업군의 112군의 전체 평균 연봉은 2,866만 원으로 확인되었다(2017년 2월 기준) jobplanet.co.kr
Q 해결 방안은 없을까?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선배들이 한 번 변화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고 그것을 후배가 보고 배우면 된다.때문에 나 역시 후배를 양성하는 것에 대한 책임감을 늘 가지고 있다.Q 디자인 교육 과정에는 문제가 없는 걸까?우리는 늘 디자인 교육 내용이나 관련 미디어를 통해성공한 디자인 기업이나스타 디자이너의 삶만을 접하게 된다.마치 저 회사에 들어가거나 저런 삶을 살아야만 디자이너로서의 성공인 것처럼.맞다.복합적인 문제다.선배들의 문제도 있지만 디자인 교육의 지향점이 편향적으로 굳어진 것도 문제다.난 심지어 학생 때 ‘디자이너의 자부심’이라는 것도 배웠다.디자인만 배우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다고 배웠다.그런데 웬걸,졸업하고 났더니 디자인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에이전시에서야 ‘디자인 곧 잘한다’는 인정은 받았지만SK컴즈로 가는 순간 난 세상에 둘도 없는 멍청이더라.그 때 처음 후회가 들었다.자본주의 땅 위에 살면서 어쩌자고 디자인만 배우고 디자인만 믿었을까 하고.디자인을 아무리 뛰어나게 잘 한다 해도 학연 지연 없이는 살아나기 힘들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Q 그렇다면 분위기를 바꿔서,우아한형제들은 어떤가?일단 첫 출근일까지 난 내 연봉이 얼마인지 몰랐다.그냥 김봉진 대표와 이야기가 잘 통하고 일이 재밌을 것 같아서 왔다.이는 나뿐 아니라 다른 임원들도 마찬가지다.우리가 새로운 직원을 면접하기에 앞서 확인하는 부분도 그 점이다.대뜸 면접장소에서 다짜고짜 “얼마까지 맞춰주실 거예요?“얼마 주실 건가요?”이렇게 이야기하는 지원자는 우리와 결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다.자신의 가치를 업무가 아닌 돈에 맞추어 둔다면 우리와 함께 일하기는 어렵다.이곳은 돈과 처우가 아닌 ‘업무’가 가치 기준이 되는 회사다.그 덕분에 나도 재미있게 일하고 있는 중이다.글 ㅣ 디자인프레스 편집부
취재 : 디자인프레스 에디터강 사진 : 이은숙(eeeun studio) 자료 : 디자인하우스 디지털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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