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퇴근 후 사이드 프로젝트를 지속하는 방법 - UI Design Guide

남의 사이드 프로젝트는 보통 마무리 다 지은 멋진 결과물 위주로 접하게 된다. 중간에 많이 그만둬도 보고 꾸준히 하기도 한 디자이너가 어떻게 지속했는지 솔직하게 얘기해보려 한다. 어떤 분야든지 기존에 흥미가 있었던 거라면 초반 입문 단계는 재밌다. 이때는 하나하나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즐겁고, 수업이 기다려지고 돈이 아깝지 않다.
어느 정도 기초를 배우고 나면 내가 하고 싶었던 결과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과정은 알게 된다. 얼추 비슷하게도 만들 수 있다. 이제 튜토리얼 몇 개를 합쳐서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기술 문제든 감각의 문제든 뭐가 해결이 잘 안 된다. 기술 문제는 강의나 선생님, 책 등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지만, 감각적인 부분은 시간을 쌓으며 다듬어야 하므로 당장 해결되진 않는다. 시간을 쌓으며 그럴싸한 것과 그저 그런 것들을 만들어내며 차츰 실망감과 지루함이 생긴다. 기술적인 부분은 터득했기 때문에 실력이 잘 늘지 않는다. 하지만 그동안 더 괜찮은 예시를 봐 왔기 때문에 초조해지고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한다.
이 단계를 넘어가기 위해 많은 창작자가 고통을 겪는다. 일단 기본은 계속하고, 잘된 거 따라 하고, 해보고 싶은 걸 시도하는 일이다. 물론 말은 쉽고 꾸준히 실행하기 제일 어려운 구간이다. 이런 매너리즘 구간을 탈피하기 위해 이거저거 시도해 보는데 현업이 있는 상태에서 돈 안 되는 작업을 진행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시도해보고 결과가 괜찮았던 ‘재밌어서 시작했지만, 점차 마음의 짐이 되어버린 작업’을 어떻게든 마무리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기존 업무와 살짝 다르면서 써먹을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한다.

나는 UI 디자이너고 최근에 3D 일러스트레이션에 관심이 생겨 개인적으로 C4D를 공부한 케이스다. 예전에는 코딩을 배웠었는데 HTML/CSS 이상의 지식을 업무에서 활용할 일이 없고, 외주가 아니라면 내가 코드를 작성할 일은 거의 없다. 이처럼 본업에 활용할 수 없으면 지속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퇴근 이후에 UI를 계속 그린다? 번아웃 걸리기 딱 좋다. 목표 없이 회사 업무와 같은 걸 공부하면 보통 지겨워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업무와 정확히 관련된 건 이미 어느 정도 하고 있는 거라 짧은 기간에 성장하는 걸 보기 어렵다. 반면 업무와 살짝 빗겨 나 있는 분야를 고르면 흥미가 있던 분야의 입문단계는 재밌어서 몰입하기 좋다. 한 2~3달 하다 그만두더라도 코딩처럼 지식은 남아서 활용할 수 있다.

2. 최소한의 행동 단위만 생각한다.

우선 ‘내가 시작한 것도 못 끝내다니 난 쓰레기야….’ 라고 자책하지 않는다. 도움도 안 되고 정신력만 낭비한다. 퇴근 후 누워서 핸드폰 보다가 저 생각이 들때쯤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때 10분 안에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업무 단위를 머릿속으로 쪼개본다. 예를 들어 ‘오늘 포트폴리오 작업 끝내야지’는 거의 소망에 가깝다.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서 이 최종 목표를 오늘 안에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퀄리티 문제, 자료 찾기, 내일 출근도 해야 하고 등등. 따라서 ‘파일 열고 어제 만들어놓은 텍스쳐 입혀봐야지’ 같은 아주 작은 단위의 행동만 생각하고 움직인다. 이전 작업의 연장선이면서 구체적일수록 좋다. ‘자료 찾기’ 같은 뭉뚱그려진 목표는 시간을 낭비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구체적으로 ‘색상 자료 3개 다운로드’ 정도로 쪼갠다. 마무리 전에 내일은 뭐로 시작해야지 정도를 포스트잇에 적어놓거나 하면 좋다. 회사는 원래 일하는 공간이고 타임 테이블과 업무 범위가 명확하기 때문에 이 정도로 신경 쓰지 않고도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집은 쉬는 공간이라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집에서 집중이 안 될 때 카페나 독서실 카페도 많이 이용해봤는데 확실히 체력이 더 필요하다. 되도록 집중적으로 가능한 주위 환경을 만들어보자.

3. 체력과 정신력 분배를 위해 작업/공부 시간을 정해놓는다.

개인 프로젝트는 늘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마음속의 마감 시간은 있지만, 의미 없는 수준이고, 공부를 위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퀄리티가 우선된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냥 꾸준히 하는 거 자체를 더 중시하는 방침으로 정했다. 퇴근하고 개인 작업을 한다는 거 자체를 스스로 엄청나게 칭찬해주고, 캘린더에 성공한 날을 기록한다. 저녁 9시~11시 또는 피곤하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조금 하는 듯이 그냥 시작이라도 하면 기록한다. 기록하고 잘 보지 않아도 기록하는 순간 매우 뿌듯하다. ‘주말에 많이 해야지’도 소망에 가깝다. 주말에 실제로 많이 했다면 자신을 칭찬해주고 아니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말자. 나 자신이 자신의 간수가 되면 즐거운 일이 없다.

4. 실망스러운 결과물은 좀 묵혀놓는다.

처음에 입문할 때는 뭘 해도 ‘와! 이게 되네’ 하면서 신난다. 본적은 있지만 구현하지 못했던 걸 어떻게 하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재밌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제를 끝내고 이제 따라 하는 거 이상의 창의적인 걸 만들려면 이제 좀 피곤한 과정이 시작된다. 검색해도 안 나오고, 포럼에 물어도 정확한 답변도 없고, 해외 강사에게 메일을 보내는 등의 골치아프는 과정을 거쳐서 기술적인 이슈를 해결했지만…. 뭔가 마음에 안 든다. 이때 뭐가 부족한지 몰라서 고칠 수가 없는 게 문제다. 이 구간을 넘기면 계속하는 거고, 실망하고 끝나면 잠깐 배운 걸로 남으면 된다. 다른 거 하다가 가끔 꺼내 보면서 이거저거 시도하다 보면 ‘아이게 그거였구나’ 하면서 해결된다. 좀 더 공격적으로 해결하려면 원데이 원렌더 챌린지(하루에서도 한 장)나 365UI(하루에 UI 컨셉 하나)처럼 매일 하나라도 만들어서 개인 계정에 올리는 식으로 작업 시간을 쌓으면 되긴 한다. 이 경우 이미 기술은 있고 창의력을 위한 프로젝트라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음으로 괜찮은 방법이지다. 하지만 역시 프리랜서가 아니면 힘들고 강박감이 즐거움을 잡아먹는다. 내가 타협한 방법은 꾸준히 하되, 별로인 건 그냥 내 폴더에만 간직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몇 개 이런 것도 안 하고 그냥 어떤 날은 강의만 본다. 별거 없지만 결과물을 내는게 당연한 환경에 있으면 이런 취미적인 사고방식이 힘들다.

5. 돈을 쓴다.

뭐라도 꾸준히 하려면 투자를 해야 한다. 이 블로그도 무료인 브런치나 티스토리로 시작했다면 중간에 그만뒀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블로그 거의 초반에 쓴 블로그 서비스 비교 글에서도 나오듯이, 네이버와 브런치를 써봤지만, 곧 업로드가 뜸해졌다. 이 블로그는 나름 도메인, 호스팅, 테마를 사는데 투자를 했고 지금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 때문에라도 신경을 쓰고 있다. 덕분에 검색 최적화가 뭔지도 알아보고 호스팅 비용을 낮추려고 노력하는 등 의도하지 않은 지식도 얻게 되었다. 뭔가를 지속하려면 어느 정도 돈을 투자해야 한다. 이번에도 C4D용 조립 컴퓨터를 맞추느라 제법 비용이 들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전 C 4D 관련 글 참고) 무료 강의는 안 봐도 60달러짜리 유료 강의는 거의 몇 달에 걸쳐서라도 악착같이 다 봤다. 최근에는 업로드 좀 열심히 해보려고 드리블 Pro 계정도 결제했다. 뭔가 계속하고 싶다면 비용이 아까워질 만한 투자를 해보는 걸 추천한다.

6. 규모를 키운다.

혼자 공부하면 심심하고 결과물이 없으니 모아서 결과물을 만든다. 주로 시도하기 좋은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에셋 pack처럼 결과물을 모아서 판매한다.
2.
위에 언급한 원데이 원렌더 같은 챌린지를 시작한다.
3.
소식지나 SNS 등으로 같은 관심사나 챌린지 집단을 만든다.
4.
소개 사이트를 만들어 프로덕트 헌트 같은 디자이너 관심사 커뮤니티에 홍보한다.
5.
작업 라이브 방송을 한다. (게임 일러스트레이터 사이에선 흔하지만 그 이외의 영역에선 잘 못본 듯 하다.)
이쯤 되면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프로덕트다. 6단계까지 왔고 결과물이 좋다면 디자인 커뮤니티에서 홍보도 꽤 됐을 가능성이 크다. 나도 몇 번 에셋을 팔아본 경험이 있는데, 큰돈은 안돼도 판매가 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고 모티베이션이 된다. 셔터스톡, The noun project, Creative Market을 컨트리뷰터 이용해 봤으며 자세한 건 나중에 한 번 모아서 다룰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