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그래프
#S6 부모님 노후자금까지 풀베팅…퇴로는 없다
2021년, 그의 나이 서른둘. 서울 용산구 경리단길에서 시작한 첫 식당을 접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탓이었다. 하루 한 팀도 손님이 들지 않았다. 텅 빈 가게 문 앞에 ‘휴업 예고’를 걸던 김훈(이하 훈)의 마음은 체념이 아닌 독기로 가득 찼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집채만 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때일수록, ‘내 손으로 만든 내 것’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배웠다.
사활을 걸었다. 연고 없이 혼자 살던 서울 집 보증금부터 뺐다. 해외살이로 모은 전 재산에 은행대출을 최대한도로 당겼다. 부모님의 노후자금까지 끌어올 땐 겁이 났다. 또 망하면 다음은 없었다.
그래서 타협했다. ‘맛으로 모험을 하지 말자’고. 그렇게 떠오른 아이템은 파스타. 고민은 다시 현재진행형이었다.‘천만이 사는 도시 서울에 널리고 널린 게 파스타집이잖아, 어떻게 다르게 만들지?’
이번엔 맛이 아닌 다른 것으로 모험을 떠날 차례였다.
“처음 한국 와서 식당을 열 땐,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음식을 만들다 보면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올 거라고, 덩달아 좋아해 줄 거라고 믿었죠. 한마디로 한국인들의 입맛이 얼마나 보수적인지 몰랐던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이한 음식 안 좋아해요. 서울에서 퓨전식당이 잘 안되는 이유죠.
태국식당(쌉·SAAP) 운영할 때 가장 좋아했던 메뉴가 태국식 비빔면이었거든요. 회심의 메뉴였는데, 손님들이 잘 안 시키는 거예요. 사람들은 좀처럼 맛으로 모험하지 않는다는 걸 그때 알았죠. 좀 더 보편적인 입맛을 겨냥할 수 있는 아이템이 필요했어요.
일상적인 데이트나 모임에 취향 타지 않고 부담없이 찾을 수 있는 메뉴. 그러니까 답은 하나였죠.” (김훈)
‘일단 파스타로 간다. 대박은 못 쳐도 중박은 쳐야 하니까.’
관건은 ‘어떤 파스타집을 만들 것인가’였습니다. 파스타집은 많아도 너무 많았거든요. 저가의 배달 전문 식당부터 프랜차이즈, 파인다이닝에 이르기까지 메뉴에 파스타 없는 곳을 찾는 것이 더 빠를 정도니까요.
당시 외식업계의 트렌드는 ‘와인’이었는데요.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면, 차가운 메탈 소재 인테리어의 럭셔리 와인바들이 손님 몰이에 한창이었습니다.
와인바는 테이블당 와인 한 병을 필수로 주문하는 게 일종의 불문율이에요. 일상적으로 가볍게 찾기엔 지갑 사정에 부담이 되는 곳이 대부분이었죠. 서울 성수, 한남, 서촌, 압구정에 우후죽순으로 문을 옆 식당 대부분이 그런 콘셉트를 일관되게 고수하고 있었어요.
훈씨는 이 대세를 전부 거슬러 보기로 했습니다. ‘트렌드에 정반대로 가기’ 전략을 택한 거죠.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5월 17일 서울 용산구 쌤쌤쌤에서 커리업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반대로 간다’ 첫 번째 전략, 콘셉트는 고급 와인바가 아닌 ‘가정식을 파는 노천 레스토랑’으로 정했어요. 가게 자리도 성수, 한남 같은 검증된 핫플레이스가 아닌 당시만 해도 허허벌판에 가까웠던 삼각지였습니다. 밑천이 충분치 않기도 했지만, 아직 ‘잠재력이 터지지 않은 곳’이라 좋았다고 해요.
리모델링하기 전 이곳은 한옥 서까래가 남아있는 전통식 찻집이었는데요. 훈씨는 오래된 목재 바 테이블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살리기로 했어요. 여기에 맞춰 인테리어 분위기는 ‘따뜻한 우드톤’으로 정했어요.
욕심 부린 건, 딱 한 가지였어요. 커다란 창이 바깥을 향해 열리는 테라스 야외석을 만들기로 한 것.
“4년을 외국에서 일하면서, 또 전 세계를 떠돌면서 정말 많은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에 가봤는데요. 항상 시그니처 좌석에 앉기 위해 몇 시간씩 기다렸어요. 어떤 자리에 앉아 먹느냐도 중요한 경험이거든요.” (김훈)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운영하는 서울 용산구 쌤쌤쌤의 메뉴 ‘잠봉뵈르 파스타’와 ‘먹물 문어 리조또’.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운영하는 서울 용산구 쌤쌤쌤의 17일 내부 모습.
‘반대로 간다’의 두 번째 전략은 메뉴. ‘집에서 만든 것을 퍼주는 듯한’ 편안한 분위기로 디자인했습니다. 커다란 냄비에 투박하게 끓여내는 가정식 콘셉트를 내세웠죠.
쌤쌤쌤의 대표 메뉴가 된 잠봉뵈르 파스타는 김훈 셰프가 호주에서 일할 당시, 직원식으로 만든 창작 요리에서 착안했어요. 버터 소스에 찍어 먹는 일본식 츠케멘이었는데요. 이 맛의 모티브를 가져와 잠봉 햄을 툭툭 찢어 올리는 파스타 메뉴로 재탄생시켰습니다. 냉장고에 흔히 있는 재료로 만들어 내던 일상식을 레스토랑 메뉴로 재해석한 거죠.
여기에 가게의 개성을 더할 특색 메뉴로 ‘라자냐’를 추가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일상적으로 먹는 오븐 요리죠.
“해외 생활을 할 때 여러 명이 함께하는 포틀럭 파티(참석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요리나 음료를 가지고 오는 북미식 파티 문화)를 다니다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메뉴 중 하나가 바로 라자냐였어요. 재료를 툭툭 쌓아서 오븐에 한 번 구워내기만 하면 5~6명은 너끈히 먹일 수 있는 간단한 요리거든요.
근데 신기하게 한국 레스토랑에선 라자냐를 잘 안 팔더라고요. 파스타는 흔한 메뉴니 상대적으로 다른 곳에선 찾기 힘든 메뉴도 하나쯤은 있어야겠다 싶었죠.” (김훈)
‘반대로 간다’의 세 번째 전략, 주류 주문은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문턱을 낮췄습니다. 식사에 부담 없이 곁들일 수 있는 하우스 와인도 다양하게 갖췄죠. 평일 점심에 찾는 직장인들이 낮술을 즐길 수 있도록 글래스 단위로 와인을 판매하고, 논알코올 음료도 다양하게 메뉴에 넣었어요.
병 단위 주류 주문이 필수인 와인바는 받을 수 있는 고객이 한정돼 있어요. 하지만 쌤쌤쌤에선 술을 즐기는 사람도, 즐기지 않는 사람도 함께 어울릴 수 있길 바랐죠.
레스토랑 이름은 직관적으로 정했습니다. 삼각지의 ‘삼’을 영어로 옮긴 ‘SAM’을 3개 붙여서 ‘SAM SAM SAM’(쌤쌤쌤).
만들어 놓고 보니 미국에서 가장 흔한 남자 이름이었어요. 그래서 쌤쌤쌤을 대표하는 페르소나로 미스터 샘(Mr. Sam)을 내세웠죠.
테라스를 내면서 바닷가를 마주한 항구도시의 분위기를 연출했어요. 손수 인테리어 콘셉트를 잡으면서 이탈리아 남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많이 봤습니다.
쌤썜쌤의 인테리어를 위해 김훈 셰프는 이탈리아 남부가 배경인 영화를 찾아봤다. 김훈 셰프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주 배경이 되는 이태리 남부 가정집의 가구나 소품, 미장셴을 참고했다고 한다. 스틸이미지 제공 소니픽쳐스
특히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 인물들이 정원 속 식탁에서 느릿느릿 식사를 즐기는 광경을 유심히 들여다봤어요. 그 아늑하고 포근한 정서를 십분 살려 이런 슬로건을 뽑았죠.
‘Sam said, enjoy here, think later.’ (미스터 샘은 말했지. 일단 여길 즐겨, 생각은 나중에 하라고.)
#S7 처음부터 샌프란시스코였던 건 아니었다
쌤쌤쌤이 문을 열자 이곳을 찾은 손님이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평을 올렸다. “여긴 마치 용산 한복판에 있는 샌프란시스코 같아요.” ‘반대로 가는 전략’에 제대로 된 날개를 달아준 건 그 여섯글자였다. ‘샌프란시스코’.
쌤쌤쌤의 모든 것을 한마디로 압축하는 단어였다. Mr. Sam이라는 가상의 자아도, 힘을 툭 빼고 가볍게 풀어낸 가정식 메뉴도, 해변의 노천 레스토랑을 상상하며 그린 콘셉트도 ‘샌프란시스코’라는 키워드 아래 깔끔하게 오와 열을 맞춰 제자리를 잡았다 . 김훈은 곧바로 브랜딩의 방향키를 ‘샌프란시스코’로 맞추고 더 정교하게 깎아내기 시작했다.
그가 직접 경험했던 도시의 정취를 그대로 가져왔다. 커다란 해변 사진이 걸렸고, 빛바랜 성조기와 미국식 다이닝을 떠올리게 하는 빈티지 소품들이 들어왔다. 항구도시의 특색을 살려, 해산물을 시그니처로 내세운 메뉴도 추가했다.
그러자 2주 만에, 사람들이 초여름 땡볕 아래 긴 줄을 서기 시작했다.
맛은 입 안에만 머무는 감각이 아닙니다. 때때로 맛은 미각의 차원을 넘어서 버리기도 해요. 어떤 사람과,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경험을 누리며 어떻게 그 음식을 먹느냐가 맛을 좌우하기도 하거든요. 한마디로 맛은 여러 가지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감각이에요.
예를 들어볼까요. 이름난 파인다이닝에 간다 하더라도 불편한 직장 상사와 함께하는 식사라면 어떤 맛도 선명하게 느껴질 리 없겠죠. 반대로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하는 끼니라면, 동네 떡볶이집에서도 혀에서 팡파르가 울리는 최고의 맛을 느낄 수 있어요.
그만큼 맛에선, ‘경험’이 중요해요. 그 경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음식이 놓여있는 공간의 분위기죠.
“외식업에선 음식만 맛있으면 끝이 아니에요. 음식만큼 중요한 게 공간 경험이죠. 제 생각에 기존의 한국 식음료(F&B)는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약했거든요. ‘먹는 장사하는 데 음식 맛만 좋으면 그만이지’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거죠.
10년 전부터 외국에 나가보면 달랐어요. 잘하는 레스토랑에 가보면 손님의 동선부터 인테리어, 공간에서 풍기는 분위기, 일하는 사람들의 응대 태도까지 전부 하나의 무드 위에서 연출이 돼 있었죠. 쌤쌤쌤에서 바로 그런 고객 경험을 만들고 싶었어요.
일단 샌프란시스코에서 살면서 느꼈던 모든 것을 담고자 했어요. 그 도시 특유의 자유분방하고 여유롭고 너그럽고 한가로운 느낌을요. 보여주고 싶은 것을 정하고 나면, 그걸 고객의 경험에 담는 방법은 다양해요. 공간을 연출할 수도 있고, 서비스를 연출할 수도 있죠.
포인트를 잡고나면 살을 붙이고 깎아나가는 과정인 거 같아요. 붙여 나가다 투머치(too much)인 것 같다? 그러면 빼면서 다듬고. 그거의 반복이죠.” (김훈)
샌프란시스코의 정취를 담다
쌤쌤쌤은 김훈 셰프가 1년 동안 머물렀던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여유로운 정취를 그대로 구현한 공간이다. 미국과 일본의 빈티지마켓에서 하나 둘 사 모은 소품들이 경험의 감도를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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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브랜딩이란 곧 조각입니다. 붙이고 덜어내고의 연속, 그러다가 포인트를 찾아내면 더 날카롭게, 더 세밀하게 깎아 나가면서 좀 더 또렷한 자기만의 ‘상(像)’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죠.
혹자는 쌤쌤쌤을 ‘SNS 인증을 위한 관상용 핫플레이스’라 이르기도 하는데요. 훈씨는 이 말을 굳이 부정하지 않아요. 오히려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죠.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 들고 싶은’ 연출을 하는 것이야말로, SNS 시대의 요식업자라면 반드시 챙겨야 할 포인트니까요. ‘보이는 것’이 중요해진 시대엔 어떤 레스토랑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고, 멋진 인증샷을 남기는 것 역시 경험의 일부가 돼요. 그 과정이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며 비아냥거리는 시선이 있다고 해서 경험하고자 하는 대세가 바뀌는 것은 아니죠.
“사람들이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자발적으로 사진 인증을 하고 후기를 남기는 건, 정말 대단한 공짜 마케팅이에요. 저는 이걸 ‘자발적 확대 재생산’이라고 부르는데요. 쌤쌤쌤 이전에 태국 식당을 운영하면서,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경험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여질까’에 집중을 많이 했어요. 쌤쌤쌤의 모든 그릇 테두리엔 저희 브랜드 로고가 커다랗게 들어가 있어요. 음식 사진을 찍으면 브랜드까지 함께 노출되도록 만든 거죠. 음식을 다 먹고 나면 그릇 중앙에 적힌 슬로건이 드러나요. 그것 역시 찍고 싶게 만드는 게 관건이에요.” (김훈)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운영하는 서울 용산구 쌤쌤쌤의 내부 모습.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운영하는 서울 용산구 쌤쌤쌤의 17일 내부 모습.
그렇게 한번 피드에 ‘인증’을 박고 나면, 또 갈 생각은 안 드는 곳. 만약 쌤쌤쌤이 그런 레스토랑이었다면, 오픈 3년째를 맞이한 지금까지 문전성시를 이루지는 않겠죠. 훈씨에서 물었습니다. ‘쌤쌤쌤의 재방문율이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는 ‘또간집’을 만드는 저력은 사실 별 것 없다고 말했습니다.
“간단해요. ‘합리성’이요. 이 돈 주고 먹을 만했다! 만족스러웠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 또 오게 만드는 힘은 심플하다고 생각해요. 가격 대비 누린 경험이 좋았다면 또 가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쌤쌤쌤이 서울에서 제일 맛있는 파스타집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다만 ‘이 가격대에서 먹을 수 있는 제일 맛있는 파스타'라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김훈)
Chapter5. ‘겉바속촉’에 미친 한국인의 입맛을 겨냥하라
#S8 어느 날 갑자기 줄이 사라지는 꿈을 꾸었다
쌤쌤쌤을 처음 오픈했을 당시, 운영시간당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딱 스무 팀이었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웨이팅이 100팀까지 치달았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 여길 수 있겠지만 고통스러웠다. 천천히 입지를 다지며 차근차근 오르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당장 며칠 뒤, 줄이 모조리 빠져서 식당이 텅텅 비는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떠 봤자 구멍가게 하나 터진 것일 뿐’이라고 자평했다. 자신의 성취를 한참 얕잡아봤다. ‘그냥 운이 좋았던 건 아닐까? 이 다음엔 뭘 보여줘야 하지?’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너무 잘돼 얼떨떨하고, 잘된 이유를 몰라 방황했다. 원인을 모르는 상태에 그냥 안주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심하는 시간 속에 자신을 오래 방치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쌤쌤쌤으로 번 돈의 전부를 그러모아 다시 한번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해 보일 기회를 만들었다.
‘한 번 더 베팅해 봐야 알겠더라고요. 제가 정말 이 업계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 만한 재목인지를요.’
그게 테디뵈르하우스의 시작이었다.
“레스토랑은 정말 손이 많이 가요. 식사 경험은 A부터 Z까지 따질 게 정말 많거든요. 웨이팅 관리도 까다롭고요. 근데 디저트 가게라면 달라요. 매장 이용객뿐 아니라 테이크아웃 손님까지 받을 수 있으니까 훨씬 확장성이 있는 아이템이죠.
처음엔 케이크를 해볼까 했는데, 안 되겠더라고요. 부모님 생신에 서울에서 가장 이름 난 케이크를 사 갔는데 고향 가는 새 생크림이 녹아 흘러내렸어요.
도넛은 ‘노티드’가 선점했고, 베이글은 ‘런던베이글뮤지엄’이 가져갔으니 이제 뭘 하나? 고민하다 나온 게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빵, 크루아상이었어요. 포장해서 선물하기에도 좋고, 쌓아놓고 다음 날 먹어도 되는 빵이라 수익성도 좋겠구나 싶었죠.” (김훈)
소진된 영감을 재충전하기 위해 ‘스터디 여행’부터 떠났습니다. 주방용 칼 하나를 배낭에 찔러넣고, 무작정 이역만리를 헤매며 요리를 배웠던 그때처럼요.
일단 빵의 종주국 프랑스로 향했죠. 하루 여섯 군데 이상의 베이커리를 돌며, 커피와 빵을 먹었습니다. 버터 냄새에 이골이 날 정도로요.
말랑말랑하고 쫄깃한 식감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빵들을 먹어보며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겉바속촉’에 열광하는 한국인들의 입맛엔 좀 더 바삭한 식감이 제격이겠다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빵터디’ 여행을 떠나다
‘겉바속촉’의 정석을 찾아 떠난 ‘빵지순례’ 여행, 쌤쌤쌤 오픈 이후 소진돼 버린 영감을 재충전하기 위한 여정이기도 했다. 훈씨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기록한 여행의 순간들을 그대로 가져왔다. 프랑스, 이탈리아, 덴마크에서 맛본 빵과 커피에 대한 감상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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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gry.gram낯선 상황에서 새로운 것에 노출되니 창의력이 무한대로 통통 튄다. 계속 보게되는 시각적 노출에 떠오르는 아이디어에 사진첩과 메모장이 남아나지를 않는다. 원문 포스팅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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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gry.gram파리에서 최고로 맛있는 바게뜨는 곧, 세계 1등 바게뜨들 아니겠습니까. 해 마다 바게뜨를 대회를 하고 거기서 올해의 1등을 뽑아낸다고 하길래 마침 파리에 있는 한달동안 최근 5년간의 바게뜨 맛집들을 찾아서 비교해봤습니다. 원문 포스팅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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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gry.gram각 년도의 최고의 바게뜨들은 정말 맛있었어요.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한, 버터랑 햄 사서 잠봉베르를 만들어 먹는데 최고급 빵과 버터, 잠봉이 만나니 입에서 녹더라구요!! 원문 포스팅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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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gry.gram코펜하겐 1일 셰프 취업기(?)
‘셰프랑 이야기 좀 할 수 있어? 난 한국에서 온 셰프 김훈이고 나 내일 여기서 일하고 싶은데..’ 원문 포스팅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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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gry.gram사실 하루동안 내가 얼마나 큰 도움을 줄 수 있고 얼마나 많은 걸 배우겠는가. 그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 브랜드의 시야에서 주방에 서보고, 요리를 하고, 접시에 담아보고, 손님을 응대해 보고 싶었다. 그게 나에게 큰 영감을 줄 것 같았다. 원문 포스팅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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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gry.gram그 말을 듣고 당황한 셰프들은 하루 일하는데 얘가 뭘하겠냐고 투닥 거렸고. 직원식으로 한식을 해주겠다고 꼬셨다. 그랬더니 눈이 번쩍 뜨이며 떡볶이를 해주는 조건으로 이 식당에서 하루 일하게 되었다. 원문 포스팅 보러가기
그래서 향한 곳은 덴마크였는데요. 사실 덴마크는 ‘재야의 고수’ 사이에선 유명한 미식의 성지라고 해요. 그중에서도 코펜하겐은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1등이 자주 나올 만큼 음식 문화에 진심인 도시죠.
훈씨는 문득 궁금해졌답니다. ‘이런 도시의 빵은 어떨까’.
그런데 웬걸,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식감의 빵들은 전부 코펜하겐에 모여있더랍니다. 마침내 제대로 구현하고 싶은 맛을 찾은 거죠. 거기선 맛만 배운 게 아니었어요.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운영하는 서울 용산구 테디뵈르하우스의 내부모습.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코펜하겐에 꽤나 오래전부터 궁금해하던 브런치 카페가 있었어요. ‘아틀리아 셉템버’라는 곳이었는데요. 사실은 이 카페에 가보고 싶어서 코펜하겐에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일단 찾아가서 불쑥 말했어요. ‘하루만 일하게 해달라.’ 예전 습관이 툭 나온 거죠. (하하) ‘아무것도 모르는 애가 와서 뭘 하겠나’ 싶은 표정으로 망설이길래 ‘스태프 밀(직원식·staff meal)로 한국식 떡볶이를 해주겠다’로 꼬드겼죠.
단 하루만이라도 그 주방에서 함께 움직여 보고 싶었어요. 그들과 같은 편에 서서, 고객들을 응대해 보고 싶었고요.
일하는 내내 그들이 뿜어내는 고유한 에너지에 반했어요. 스태프들끼리 서로를 깊게 신뢰하는 게 느껴지는 팀이더군요. 한국의 주방은 무지 딱딱하고 엄격해요. 드라마 ‘파스타’에 보면 무서운 셰프가 나오잖아요. 여긴 다르더라고요.”(김훈)
아틀리에 셉템버는 환대의 에너지가 끓어 넘치는 곳이었어요.
오래 손발을 맞춰온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그 능숙한 편안함, 로컬 손님들을 가까운 친구처럼 반기고 친밀하게 대접하는 그 특유의 분위기에 반했습니다. 고객을 서비스 대상이 아닌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대하는 게 느껴졌거든요. 그 훈훈한 온기에 매료된 겁니다.
한국에 새롭게 문을 열 크루아상 카페에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봐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운영하는 서울 용산구 테디뵈르하우스의 5월 17일 내부 모습.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그는 쌤쌤쌤을 통해 확인한 성공 방정식을 테디뵈르 하우스에 ‘확장 심화 버전’으로 적용했습니다.
일단 사람들의 머릿속에 ‘한 장면의 이미지’로 각인될 수 있을 법한 브랜딩부터 고민하기 시작하죠. 브랜드를 상징하는 캐릭터(BI)로 가장 먼저 떠올린 건 ‘테디베어’였습니다.
오리지널 캐릭터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익숙함을 끌어내는 쪽으로 공략했어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사방에 브랜딩 참고자료가 널려 있었죠.
전세계에서 공수해온 100여 마리 테디베어
일단 ‘테디베어가 테마인 카페를 열겠다’고 공언하자 전 세계에서 그의 친구들이 빈티지 테디베어를 보내줬습니다. 훈씨는 외국 중고거래 사이트를 탈탈 털어 다양한 버전의 테디베어를 끌어모았죠.
100마리가 넘는 테디베어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보니 그 자체가 진풍경이었어요. ‘테디베어 천국’이라는 콘셉트 하나만으로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 된 거죠. 그 자체로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하다는 뜻)’한 풍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5월 17일 서울 용산구 테디뵈르 하우스 앞에서 본보와의 인터뷰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쌤쌤쌤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제 손을 거쳤지만, 테디뵈르 하우스를 만들면서는 달랐어요.
믿을만한 F&B기획자 동료가 함께 총괄 디렉팅을 맡았고, 공간 설계와 로고 디자인, 맛 개발을 각각 다 다른 전문가들에게 맡겼어요. 브랜딩을 하는데 처음으로 ‘팀’을 꾸려본 거죠. 각자의 분야를 깊이 파본 사람들끼리 만나 협업을 하니, 확실히 다른 완성도가 나오더라고요.
제가 빵 전문가가 아니니까, 패스트리만을 전문으로 만들어 온 파티시에를 동료로 모셨는데요. 맛 테스트만 17번 이상을 거쳤죠.
쌤쌤쌤에서 100m도 안 떨어진 곳에 오픈하는 게 전략적 판단이기도 했어요. 오픈 한 달 전부터 쌤쌤쌤을 찾는 고객들에게 열심히 홍보했죠. 이곳에서 식사를 마친 고객들이 바로 테디뵈르 하우스에서 디저트와 커피를 즐기러 갈 수 있게끔요.” (김훈)
색다른 팝업으로 맛을 변주하다
씨푸드 팝업, 제철 생선 방어 팝업, 타파스 팝업, 하이주얼리 브랜드 ‘까르띠에’와의 콜라보까지… 쌤쌤쌤과 테디뵈르하우스에서는 ‘상식을 벗어난’ 이색 팝업들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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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6. ‘성공 강박’ 돌림노래…좋아하지 않는 일 오래할 수 없다
#S9 모두가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만 같은 무대 위의 고독
2022년 10월, 테디뵈르 하우스가 오픈과 동시에 폭발적인 매출을 기록하며, 김훈이 만든 두 브랜드는 삼각지에서 새롭게 팽창하는 ‘용리단 상권’을 상징하는 대표 아이콘이 됐다. 크루아상은 구워내는 족족 동이 나고, 줄은 날이 갈수록 길게 늘어졌다. 그런데 그는 점점 어디론가 가라앉기만 했다.
‘여기서 더 손님이 많아지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끝이 없는 자기 증명에 빠진 사람처럼 머릿속엔 또 다른 강박이 떠올랐다. ‘자, 이다음엔 뭘 해내야 하지?’
만나는 사람마다 그에게 물었다. “테디뵈르 하우스 다음엔 뭐야? 이다음엔 어떤 거 만들거야?” 그 질문이 어느 순간 밀린 숙제를 독촉하는 잔소리처럼 짜증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너무 지쳐버려서, 완전히 다 타버려서, 이대로 남은 인생은 영영 자신이 만든 기록 안에 갇혀 버릴 것만 같다는 불안이 덮쳤다.
모두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것만 같은 무대 위 고독이었다. 그 조명 아래 몸이 다 타버릴 것만 같았다.
“테디뵈르하우스가 두어 달 만에 빵 뜨고 나서 허무감이 밀려왔어요. 육체적으로 힘든 건 괜찮았어요. 그 정도의 업무강도는 예전부터 익숙했으니까. 정신적으로 여백에 없는 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누군가 좋은 취지로 전해주는 피드백도 받는 족족 다 튕겨 나오는 거예요. 뭔가를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이 하나도 없었죠.
쌤쌤쌤과 테디뵈르 하우스의 연매출이 100억 원 정도를 찍었는데, 기쁜 마음이 들질 않았어요. ‘좋은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이 남아있지 않았던 거 같아요. 어떻게든 남한테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더 컸더라고요.” (김훈)
돌이켜보면, 삼십대 내내 훈씨를 추동한 건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이었습니다. 스물네살, 회계사 시험을 그만둘 때도 생각했죠. ‘난 실패한 인간이야.’
도피 아닌 도피를 선택해 전 세계를 유랑하듯 여행할 땐, 무중력 상태에서 허공을 떠다니는 사람처럼 자유로웠습니다. 외국에서 일하는 시간 역시, ‘한국을 완전히 떠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의 바다를 부유하듯 보냈죠.
하지만 2019년, 4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순간 모든 것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해요. 외식업계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눈부신 성공 서사들이 새롭게 들려와요. 훈씨는 그 틈에 끼어 숨 막힐 듯한 강박을 느끼기 시작했죠.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5월 17일 서울 용산구 쌤쌤쌤앞에서 본보와의 인터뷰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불안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성취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죠. 훈씨 역시 비슷했어요. ‘안주하면 여기서 끝난다’라는 불안 속에서 되뇌었죠. 더 올라가야 한다고. 그렇게 끊임없이 기어오르다 보니, 이건 끝이 없는 돌림노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언제나 더 큰 성취가 있어야 한다는 성공 신앙이 그의 머리를 점령한 지 오래였습니다.
그렇게 ‘더더더더더’를 외치다 보니, 어느 순간 ‘적정선’을 판별할 수 있는 사고 회로가 마비돼 버렸죠.
“끝내 성취가 저를 괴롭게 하더라고요. 만족할 만한 성취를 하고 나면, 그걸 음미하며 즐겨야 하는데 그게 도저히 안 돼요. 목표 지점까지 열심히 오르고 나면, ‘또 눈앞에 오르막이다, 얼른 올라가자’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누구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노력하고 나면, 또 그 위에 있는 누군가가 보여요. 저는 욕심이 대단히 많거든요. 테디뵈르 하우스를 잘 안착시키고 나니까, 이번엔 이성당과 성심당이 보이는 거죠. ‘어떻게 해야 저 브랜드처럼 전통과 유산을 가진 빵집이 될 수 있을까?’ 계속 괴로워했어요. 그게 건강한 고민이면 좋은데, 자꾸 ‘따라가야 할 상대’로 여기는 거예요.” (김훈)
성취를 판단하는 기준은 나한테 있어야 하는구나.
성취를 판단하는 기준은 나한테 있어야 하는구나.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17일 서울 용산구 쌤쌤쌤에서 가게 대표 메뉴인 잠봉뵈르 파스타를 만들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17일 서울 용산구 쌤쌤쌤에서 가게 대표 메뉴인 잠봉뵈르 파스타를 만들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5월 17일 서울 용산구 쌤쌤쌤에서 가게 대표 메뉴인 잠봉뵈르 파스타를 만들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그러다 어느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듯 이런 생각이 들었죠.
‘성취를 판단하는 기준은 나한테 있어야 하는구나’.
지금까지 그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한 건 ‘내가 아닌 외부의 기준’임을 깨달은 거죠.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었죠. ‘연매출이 얼마 정도는 되어야 대박의 반열이다’, ‘인스타그램 좋아요수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핫플레이스 등극이다’. 단 한번도 그 성취의 기준을 스스로 세워본 적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요즘은 매일 ‘어떻게 나만의 기준을 만들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요. 내 무게 중심이 없으면 계속 휘둘리겠더라고요.
일부러 사람을 안 만나고 있어요. 자극을 줄이기 위해서요. 오전 10시쯤 신용산에 와서 오후 5시에는 반드시 이곳을 벗어나요. 저녁엔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면서 계속 감각을 깨워놓으려고 하죠. 작게는 ‘테디뵈르 하우스의 신메뉴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부터 크게는 ‘40세의 내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죠.” (김훈)
‘훈그리그램’ 김훈의 영감 노트
김훈 셰프의 인스타그램 (@hun.gry.gram)에는 F&B 기획자이자 오너셰프로서의 고민의 흔적이 담긴 포스팅이 올라온다. 그만의 ‘영감 일기장’을 슬쩍 엿보자.
첫 번째 원칙, ‘사랑하고 좋아하면, 차별된 맥락이 생긴다’
두 번째 원칙, ‘브랜딩은 5%로 시작해 100%가 될 때까지 쌓는 것’
세 번째 원칙, ‘매력만 있으면 1등 아니어도 성공할 수 있다’
첫 번째 원칙, ‘사랑하고 좋아하면, 차별된 맥락이 생긴다’
hun.gry.gram
hun.gry.gram숙련도는 결국 ‘좋아함’에서 나온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좋아야만 참고 인내하고 앞으로 나아 갈 수 있는데 좋아하지 않으면 그 인계점을 넘기가 힘들다. 원문 포스팅 보러가기
“숙련도는 결국 ‘좋아함’에서 나오는 거 같아요. 외식업이 진입장벽이 낮잖아요. 그럴수록 경쟁이 치열한데, 이런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계속 연구하고 공부해야 해요.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이 과정을 버텨내기가 쉽지 않죠.
돌이켜보면 저는 정말 먹는 것을 좋아했어요. 어릴 때 우리집은 텔레비전에서 <결정, 맛대맛> 보고 지방까지 맛집 순례하러 가는 별난 가족이었거든요. 먹고 마시는 것에 시간과 돈을 쓰며 이십대를 보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좋아하지 않아도 잘할 수는 있는데, 좋아하지 않는 일을 오래할 수는 없구나. 어떤 일을 정말 좋아하면 거뜬히 임계점을 넘길 수 있더라고요.
요새 이력서를 살피다보면 참 아쉬운 게, 다들 경력이 6개월 단위예요. 하다못해 3개월 하다 그만둔 경우도 많고요. 제가 ‘좋아하는 마음’으로 이 분야를 오래 파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사랑하고 좋아하는 애호(愛好)가 쌓이고 쌓여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된다. 적어도 저는 ‘외식업’이라는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파본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요.”
두 번째 원칙, ‘브랜딩은 5%로 시작해 100%가 될 때까지 쌓는 것’
hun.gry.gram
hun.gry.gram어떻게하면 브랜딩을 잘 할 수 있나요?’ 정말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브랜딩이 거품에 가득 쌓인 단어 같아요.원문 포스팅 보러가기
“저는 모든 브랜딩은 딱 5% 수준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오픈할 때 ‘짠'하고 보여주는 건 딱 그 정도고요. 나머지 95%는 운영하면서 쌓아나가는 거예요. 쌤쌤쌤도 처음부터 ‘샌프란시스코’ 콘셉트를 취했던 게 아니잖아요. 때로는 소비자의 피드백을 반영하면서, 때로는 내가 가진 가설을 조금씩 시험해 보면서 고객 경험을 구체화하는 거죠.
캐릭터나 인테리어, 메뉴나 콘셉트는 결국 초기값이에요. 이끌어가는 사람이 이걸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내가 이 공간, 이 음식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가’가 명확해야겠죠. 그걸 일관성 있게 쌓아나가는 게 곧 브랜딩이라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완성된 개념이 아닌 거죠.”
세 번째 원칙, ‘매력만 있으면1등 아니어도 성공할 수 있다’
hun.gry.gram
hun.gry.gram1. 자발적인 확대 재생산. 제가 브랜드를 만들때 가장 신경쓰는 키워드 에요. 원문 포스팅 보러가기
“한국 사회에서 실력으로 인정받으려면 반드시 1등을 해야 해요. 너무너무 어려운 싸움이죠. 반면, 매력으로는? 10등 안에만 들어도 승산이 있거든요. 전도연 같은 배우를 보면, 최고로 아름다운 배우는 아니지만 자기만의 독보적인 매력을 갖고 있잖아요. 저는 대체불가능한 그 매력이야말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힘의 근원이라고 생각해요.
방문자 수, 매출, 고객 수, 좋아요 수 등 정량적으로 평가되는 기준에서 좀 벗어나서 독보적인 뭔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매력인 거 같아요. 브랜딩에 공식 같은 건 없다고 하지만, 저만의 원칙이 있다면 바로 이런 거 같아요.”
Epilogue. 당신이 깬 맨땅은 무엇인가요?
돌이켜보면, >훈씨의 이십대는 매 순간이 맨땅을 깨는 과정이었습니다.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다 뜬금없이 요리사가 되겠다며 칼 하나 들고 편도 비행기 티켓을 끊은 것도, 취업 비자 없이 무턱대고 미국에 가서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의 문을 두드린 것도 전부 무모한 시도였죠. 연고 하나 없는 서울에 생소한 태국식당을 차린 것도, 빵 한번 구워본 적 없는 사람이 크루아상 카페를 하겠다고 나선 것도 다 ‘맨땅에 머리 깨기’였어요.
김훈 대표가 5월 17일 서울 용산구 테디뵈르하우스(왼쪽)와 쌤쌤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베이커리 카페 테디뵈르 하우스의 매장 콘셉트는 프랑스(파리), 쌤쌤쌤의 매장 콘셉트는 미국(샌프란시스코)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17일 서울 용산구 쌤쌤쌤에서 가게 대표 메뉴인 잠봉뵈르 파스타를 만들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튼튼한 맷집 하나로 계속 들이미니 결국 머리 대신 땅이 깨지더랍니다. 조리학과 졸업장 하나 없는 ‘무스펙’ 요리사가 용리단길의 ‘핫플 메이커’가 되기까지 10년, 그 10년은 머리에 피 마를 일 없었던 날들이었다고 해요.
남다른 맷집을 만든 힘은 무엇이냐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결핍이요. 어릴 때부터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어요. 스무살 땐 아버지 사업이 부도나서 도망치듯 군대부터 갔죠. 그땐 그게 참 원망스러웠는데, 그래서였을까요? 결핍이 많은 만큼,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았어요.
지인 중에 재산이 천억 단위에 이르는 재벌가 자제가 있어요. 그 친구가 저를 볼 때마다 너무 부럽다는 거예요. 그 말이 처음엔 이해가 잘 안 됐는데, 나중에 알았아요. 결핍이 없는 삶에는 허무가 가득하다는 걸요. 가지고 싶은 걸 너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 보니, 뭔가 쟁취하고 싶다는 자기 욕망이 없어지는 거예요.”(김훈)
“돌이켜보면 저는 언제나 그 결핍이 추진력이 됐어요. 뭔가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은 그게 손 안에 없을 때 가장 강하니까.
‘저거 왜 잘됐을까’, ‘저긴 왜 저렇게 늘 사람이 많을까’하고 잘된 식당들을 보며 늘 이유를 찾아요. 이유를 찾아야 나도 그걸 손에 넣을 수 있으니까. 결핍에서 비롯된 욕심으로 그걸 반복하다 보니 저만의 힘이 된 거죠.”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5월 17일 서울 용산구 쌤쌤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성취 강박에 잡아 먹혀 있던 시간이 지나고, 훈씨는 천천히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최근엔 ‘다음엔 뭐 할 거냐고 묻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올렸어요. ‘나만의 템포를 지키며 걸어가겠다’는 단단한 다짐을 담은 글이었죠.
에필로그에 이르고 보니 맨땅브레이커 3호 인터뷰는 ‘누군가의 진짜 시작을 엿본 기록’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훈 셰프는 빛나는 성취 한가운데 있지만, 지금이 그가 만들 서사의 정점은 아닙니다.
왜냐면 이제 막 찾아나서기 시작했거든요. 주입된 욕망이 아닌 ‘자기 안에서 우러난 자생적 욕망’을요.
“더 이상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일을 벌이지는 않을 것 같아요. 새로운 걸 해야 하는 이유, 그 답을 찾을 때까지는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요. 그동안은 좀 더 열심히 놀고, 더 배우고, 나를 채울 겁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어차피 시간은 제 편이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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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셰프 인스타그램 발췌
Editor's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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