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랑이 '꼬뜨게랑'으로 우아해졌다? 빙그레 ‘도른자’ 마케팅 실험 - 중앙일보

빙그레는 최근 광고홍보 및 유통업계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회사다. 이들이 줄줄이 내놓은 이색 굿즈와 협업제품들이 출시와 동시에 화제가 되면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CJ 올리브영과 함께 만든 '바나나맛 우유' 림밤·크림을 시작으로, 글로벌 패션 브랜드 '휠라'와 협업한 아이스크림 '메로나' 운동화는 초도 물량 6000족을 2주만에 다 팔아치웠고, 애경과 만든 메로나 칫솔도 40만개 이상이 팔렸다. 인스타그램에서도 만화 캐릭터를 내세워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빙그레 마케팅 신화를 이끌고 있는 담당자들을 만나봤다.
빙그레 공식 인스타그램 캐릭터인 '빙그레우스'와 꽃게랑, 메로나 등 인기 제품을 굿즈로 만들어 인기 몰이 중인 식품회사 '빙그레' 직원들이 9일 서울 정동 빙그레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수영 사원(마케팅 NC팀), 조수아 차장(미디어전략팀), 이병욱 대리(마케팅 NC팀). 우상조 기자
지난 9일 오후 서울 정동 빙그레 본사 미팅룸에 3명의 직원이 모였다. 마케팅 NC(뉴카테고리)팀 소속의 이병욱 대리와 김수영 사원, 미디어전략팀의 조수아 차장이다. NC팀은 각 브랜드의 굿즈 마케팅을 전담하는 팀이다. 빙그레는 지난해까지 각 브랜드에서 자체적으로 굿즈와 협업 마케팅을 해오다 진행 프로젝트 수가 많아지면서 아예 전담 부서를 따로 만들었다. 미디어전략팀의 조 차장은 인스타그램·유튜브 등 SNS채널을 통한 기업 홍보를 담당한다.
이병욱 대리는 지난 7일 과자 '꽃게랑'의 패션 브랜드 '꼬뜨게랑'을 만들어 출시한 주인공이다. 꼬뜨게랑은 힙합 패션을 컨셉트로 래퍼 지코를 모델로 세워 로브(가운)부터 로고 셔츠·티셔츠·선글라스·가방·마스크까지 제대로 된 패션 아이템들을 고루 갖췄다. 오는 14일까지 G마켓에서 1주일간 한정 판매하는데 가방은 출시 하루 만에, 남성 셔츠는 이틀 만에 준비한 1000여장의 제품이 모두 팔렸다. 식품회사에서 패션 브랜드라니. 이 대리는 "출시 34년차 장수 브랜드인 꽃게랑의 주요 소비자층을 3040에서 1020으로 낮추려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쉽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며 "MZ세대가 좋아하는 음악과 스타에 초점을 맞추고 자연스레 이들이 좋아하는 패션 제품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컨셉트는 '영덕 오포리 해변에서 영감을 받아 영롱하게 탄생한 국내 하이엔드 브랜드'로 잡았다. 브랜드 이름은 과자 이름 '꽃게랑'을 프랑스어처럼 발음해 본 것을 그대로 썼다. "K패션의 자부심과 플렉스(Flex)를 나타내고 싶었다"는 게 이 대리의 설명이다.
꼬뜨게랑은 수익 사업은 아니다. 오히려 "팔면 팔수록 손해"란다. 이 대리는 "꽃게랑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높이는 게 목적인데 전반적으로 다 흥미로워 하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강력한 화자가 필요한데, 돈은 없었다." - 미디어전략팀 조수아 차장
'빙그레 왕국'의 후계자이자 빙그레의 모든 상품을 몸에 두른 완벽한 외모의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이하 빙그레우스). 요즘 SNS에서 인기 높은 인스타그램 속 만화 캐릭터다. 빙그레우스는 올해 2월 말 빙그레 인스타그램 계정에 등장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게시물당 평균 3000~5000개였던 '좋아요' 수는 2배 이상 뛰었고, 40~80개에 머물렀던 댓글 수도 300~2000개로 수십 배가 늘었다. 현재 빙그레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는 14만명. 식품회사 인스타그램 계정 중 가장 많다. 조 차장은 이 빙그레우스를 탄생시키고 운영까지 담당한 주인공이다. 그가 만화 캐릭터를 들고 나온 이유는 뭘까. 조 차장은 "SNS에서 MZ세대와 소통하려면 강력한 화자가 필요했다"며 "MZ세대가 좋아할 만한 강력한 페르소나를 만화 캐릭터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빙그레우스의 성공에 힙입어 빙그레 제품들을 의인화한 '옹떼 메로나 브루쟝'(메로나), '투게더리고리경'(투게더) 등의 캐릭터를 줄줄이 창조해 빙그레 왕국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만화여야만 했던 이유도 있다. 조 차장은 "운영 예산이 적었다. 인스타그램·유튜브 등 SNS 계정 1년 운영 예산이 2억원인데 이 비용 안에서 이벤트·경품 제작·배송까지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며 "당연히 현실의 스타를 모델로 쓸 수 없었고, 또 장기적으로 콘텐트를 계속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나온 접근법"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초 그는 유머 코드 콘텐트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스튜디오 좋'과 함께 작업에 돌입했고, 2월 24일 빙그레우스의 셀카컷 6개를 5분 간격으로 올리는 방법으로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을 알렸다. 조 차장은 "이렇게 사진으로 '도배'하는 방식은 인스타그램에서 옛날 방식이지만, 빙그레우스가 완벽한 외모의 허당미 있는 반전 캐릭터라는 걸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택한 방법"이라며 "캐릭터를 글로 적어 넣는 것보다 젊은 세대에게 세련되게 다가간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김수영씨는 빙그레의 모든 제품과 관련된 협업 마케팅을 담당한다. 올해 상반기 론칭한 예스24의 '붕어싸만코' 독서대와 파우치, 뚜레쥬르의 '메로나' 케이크와 빵이 그의 손을 거쳤다. 그는 "빙그레 굿즈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외부 업체들의 협업 제안이 밀려드는 상황"이라며 "협업 제안이 오면 해당 브랜드 마케팅팀과 조율해 제품을 만들어 나간다"고 말했다. 협업에서 그가 집중하는 것은 '재미'다. 김씨는 "협업이 성공하려면 제품의 특징을 잘 담는 동시에 재밌어야 한다. 재미있어야 궁금해지고, 궁금해야 구매를 한다"고 설명했다. 90년대 생으로 스스로가 MZ세대인 그는 "SNS나 TV에서 뭐가 재밌는지를 찾고, 내가 왜 거기서 재미를 느끼는지 이유를 생각해본다. 특히 소비자에게 익숙한 오래된 브랜드일수록 사용 경험을 바꿔주는 게 좋다. '먹는 경험'을 입고 뿌리고 바르는 경험 쪽으로 풀어가면 일단 색다르단 점에서 흥미를 일으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이런 '작품'들을 선보일 수 있었던 데는 믿고 맡기는 조직 문화가 배경이 됐다. 이 대리는 "꼬뜨게랑을 기획했을 때 경영진 중 이 프로젝트의 성패를 의심하거나 걱정하는 분은 없었다"고 전했다. 빙그레에서 근무한지 18년차인 조 차장 역시 "과거엔 생소한 프로젝트를 하려면 용어부터 하나하나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지만, 최근 3~4년 동안엔 모두 믿고 맡겨 준다"며 "여러 차례 성공한 경험으로 이젠 새로운 것을 들고 가면 '무조건 하라'며 응원해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