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이상한 게 독창적 '오디크 현상' '간(肝)×지 콜라보.'
누구와 누구의 협업일까. 모르겠다면 힌트 하나 더. '우루사로입지이ㅋ.' 간 기능 개선제인 '우루사'와 남성복 전문 브랜드인 '지이크'가 뭉쳤다. 지난달 말 우루사 곰이 그려진 슬리퍼, 양말, 티셔츠 등을 내놓은 것. 제품을 구매하면 '실내복'이라 적힌 커다란 약 봉지에 이를 담아 준다.
예전 같았으면 우루사 곰이 그려진 옷을 누가 입느냐며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엄청난 '관종'이란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 젊은 세대 이야기는 다르다. 소셜미디어상에서는 '이거 입고 피로 날아갔으면 좋겠다' '올해 받은 선물 중 최고'라는 인증 글이 넘쳐난다.
우루사뿐 아니다. 최근에는 천마표 시멘트가 남성 패션전문업체 4XR과 함께 가방을 내놨다. 마치 시멘트 포대를 멘 듯한 느낌이 든다. 강렬한 매운맛으로 인기를 끈 '불닭볶음면'은 애경산업과 함께 짙은 빨간색을 띠는 치약을 내놨고, 하이트 진로는 온라인 패션몰 무신사와 함께 '참이슬 오리지널 팩 소주'를 본뜬 가방을 출시하기도 했다.
인싸템 된 예순여덟 살 곰표패션·식품·유통 기업을 넘나드는 이색 협업의 시작은 대한제분의 밀가루 브랜드 '곰표'였다. 2017년 말 대한제분이 시장조사 기관 '엠브레인'에 브랜드 인지도 조사를 의뢰했더니, 2030 소비자 중 밀가루 하면 곰표를 떠올린다는 응답이 20%에 그쳤다. 사실 그간 곰표는 브랜드를 알리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밀가루 매출액 대부분이 기업 간 거래(B2B)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제분은 20~30대 소비자가 곰표에 대해 모른다면, 먼 훗날 제과·제빵 기업도 곰표를 외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2018년 7월, 곰표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4XR과 협업해 5가지 디자인의 곰표 티셔츠를 내놨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식품업체의 패션 외도를 젊은 세대들은 '재미'로 받아들였다. '가잼비(가격 대비 재미)'를 따지는 젊은 세대들이 소셜미디어에 앞다퉈 인증샷을 올리면서, 티셔츠는 완판됐다.
이때부터 대한제분과 협업을 원하는 기업의 러브콜이 쏟아졌다. 곰표 밀가루의 하얀 이미지와 어울리는 '곰표 밀가루 쿠션' '곰표 밀맥주' '곰표 팝콘' '곰표 아동복'까지 출시됐고 대부분이 완판됐다.
곰표 밀가루 쿠션을 구매한 정모(31)씨는 "처음에는 밀가루 쿠션이라는 이름이 너무 재미있어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 구매했다"며 "실제 써보니 제품력도 좋아 만족한다"고 했다.
대한제분 박재정 마케팅팀 담당자는 "협업을 하게 되면 상표권에 대한 소정의 로열티만 받는다"며 "애초 수익을 위한 게 아니라 브랜드를 활성화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했다. 박 담당자는 "그 목표는 충분히 이뤘다고 생각해서 로열티 수익 일부도 기부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상한 것을 독창적으로 여기는 시대
이향은 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교수는 "이상한(odd) 것이 독창적(unique)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오디크 현상'으로 볼 수 있다"며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협업이 아니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새로운 협업을 해야 신선하다고 주목받는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특히 젊은 세대는 이를 재밌는 놀이처럼 받아들인다"며 "오디크한 것일수록 소셜미디어에서 더 잘 먹히고, 삽시간에 번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기업들도 점점 더 센 강도를 찾는 것 같다"고 했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한 뉴트로(새로움과 복고를 합친 말)의 인기도 한몫했다. 곰표, 참이슬, 천마표 등은 대부분 상당히 오래전부터 국내에 있던 브랜드다. 이를 입는 옷이나 신발 등으로 새롭게 즐긴다는 점이 뉴트로 감성과 잘 들어맞는다.
단, 협업이 지나치게 자극적이거나 괴기하게 흐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무조건 재밌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다 보면, 제품의 본질을 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남정미 기자 nj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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