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기상천외 중고 거래시장 '정국 레모나 통 3만원.'
지난 14일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 올라온 글이다. '레모나 통'은 경남제약이 지난해 11월 인기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협업해 출시한 레모나 특별 패키지 상품을 말한다. BTS 멤버인 정국의 얼굴이 새겨진 레모나 빈 통을 정식 제품(1만5000원)의 2배 값에 판다는 것이다. 21일 오후 번개장터에서 같은 상품을 검색했더니, 레모나 BTS 패키지 빈 통을 2만~3만원에 판다는 거래 글이 300개 넘게 쏟아졌다. 중고 거래로 레모나 통을 구입한 한 BTS 팬은 "무작위 배송이다 보니 새 제품을 사면 원하는 멤버가 새겨진 통을 고를 수 없어 중고 거래가 인기"라며 "한정판이라는 소문 때문에 가격은 점점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온라인 중고 거래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기상천외한 상품이 매물로 쏟아지고 있다. 단순히 안 쓰는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내다 팔던 중고 거래 시장이 소비자 간 직거래 플랫폼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전에는 볼 수 없던 다양한 물건이 거래되는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 불황 여파로 중고 물품 수요가 늘면서 시장은 더 커질 전망이다. 업계에선 올해 국내 중고 거래 시장 규모가 2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에선 정부 단속이 느슨하다는 점을 악용해 불법 거래까지 횡행하고 있다.
국내 중고 시장에서 핫한 제품은 '명품' 포장재다. 샤넬·SKⅡ 등 명품 화장품 빈병이 병당 1만~2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주로 20·30대 여성이 자신의 SNS에 올릴 사진을 촬영할 때 인테리어 소품으로 쓰기 위해 화장품 공병을 중고로 구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명품 제품을 담는 포장 상자나 쇼핑백도 중고 시장에서 없어서 못 파는 품목이 되고 있다. 루이비통·에르메스·구찌 등의 쇼핑백은 온라인 중고 시장에서 작은 것은 7000원, 큰 것은 1만5000원에 팔리고 있다. 지난 20일 중고나라에 샤넬 에센스 빈병 판매 글을 올린 A씨는 "그냥 버리기보단 용돈이라도 벌자는 생각에 글을 올렸다"며 "올리자마자 4~5명에게서 구매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중고 거래 시장에선 유튜브·인스타그램 등 SNS 계정도 인기 상품이다.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지난달 초 구독자 2만명을 보유한 유튜브 계정을 300만원에 구입했다. 유튜브는 구독자 수가 많을수록 영상 수익이 늘어나기 때문에 인기 계정을 통째로 사버린 것이다.
중고나라·번개장터 등에 '유튜브 계정'을 검색했더니 계정 매매 게시물이 200~300건 나왔다. 보통 구독자 1만명 이하 계정은 100만원 안팎, 1만명 이상은 200만원 이상에 거래되고 있었다.
SNS의 '좋아요' 숫자를 높여주는 거래도 이뤄진다. 번개장터에서 '인스타그램 좋아요'를 검색했더니 게시물이 117건 나왔다. '좋아요 10개에 500원' '좋아요 10개와 팔로어 10명을 합쳐 1000원' 등의 내용이다. 한국인 계정으로 좋아요를 눌러주면 외국인 계정에 비해 1건당 3배가량 돈을 더 받는다는 게시물도 있었다.
고인의 유골을 보관하는 납골당 안치단도 최근 중고 거래 시장에서 판매가 늘고 있다. 다른 납골당으로 옮기려는 유족들이 기존에 분양받은 납골당 안치단을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파는 것이다. 납골당 자리는 부동산처럼 분양받아 구입하기 때문에 개인 간 거래를 해도 된다. 부부 안치단은 850만원 이상, 일반 1명분 납골당 안치단은 400만~5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중고 거래 품목이 증가하면서 온라인상에선 불법 거래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온라인 쇼핑몰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정부 단속이 느슨한 점을 악용한 것이다. 번개장터에서 '전자'를 검색하면 '럭스젠킷 전자담배 절반 이하 가격에 판다(7만원)' '릴멀티 전자담배 반갑 사용하고 내놓는다(4만원)' 등 전자담배를 팔겠다는 게시물이 100여개 나왔다.
일부 포털 게시판에는 "'전자담배' '전담'이 금지어이기 때문에 사고 싶으면 '전자'로 검색하세요"라고 설명하는 게시물도 있다. 한 중고 제품 판매자는 "온라인 중고 거래를 할 때는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기 때문에 미성년자도 돈만 있다면 쉽게 전자담배를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콘택트렌즈·의약품 등 온라인 판매가 금지된 상품도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는 버젓이 팔리고 있다. 도수가 있는 콘택트렌즈는 의료기사법에 따라 정부 승인을 받은 안경 매장에서만 판매할 수 있다. 하지만 당근마켓·중고나라·번개마켓에서 '오렌즈' 등 콘택트렌즈 제품명을 검색하면 판매 게시물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의약품도 마찬가지다. '해열' '진통' '수면 보조' 등을 검색하자 300~400개 의약품을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는 글들이 나왔다. ◇중고 업체들 "단속 한계"중고 거래 업체들은 이런 불법 거래 문제가 불거지자 최근 모니터링 인력을 늘리는 등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당근마켓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주류·담배, 반려동물, 의약품·의료기기 등 플랫폼 내 판매가 허용되지 않는 상품을 걸러내고 있다. 번개장터도 올해 모니터링 인력을 3배 이상 늘리고, 반복해 규정을 어기는 이용자는 영구 차단하고 있다.
하지만 업체들은 "워낙 편법이 많아 모두 잡아내기엔 역부족"이라고 말한다. 한 중고 거래 업체 측은 "여전히 플랫폼의 감시망을 피해 불법 거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시스템을 계속 보완해 가겠다"고 밝혔다.
[최인준 기자 pen@chosun.com] [우수민 인턴기자(서울대 불어교육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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