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좋은 구석이 없는데, 이상하게 끌리는 사람이 있는가? 연애는 하고 싶지 않지만, 톡 건드리면 터질 듯 세포가 팽창하는 듯한 연애 직전의 느낌만은 그리운가? 이 사람이 내가 찾던 그 사람일지, 확신이 들지 않는가? 또 한 번의 실패담만 추가하게 될까 두려운가? 지금부터 소개하는 영화들은, “네 마음 다 알아”라고 말해준다.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10 Things I hate about you ㅣ 1999 ㅣ 감독 길 정거 ㅣ 출연 줄리아 스타일스, 히스 레저, 조셉 고든 래빗
마치 연애만이 지상 최대의 과제인 양 행동하는 동갑내기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똑똑하고 시니컬한 ‘캣’(줄리아 스타일스). 연애할 생각이 단 1g도 없는 캣에게 학내 아웃사이더 ‘패트릭’(히스 레저)이 접근한다. 실은 언니가 연애해야 자신도 남자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아빠의 엄명으로, 동생 ‘비앙카’(라리사 오레이닉)와 그에게 잘 보이고 싶은 ‘카메론’(조셉 고든 래빗)이 짠 계략(?)이다. 패트릭은 처음엔 돈을 위해 캣에게 접근하지만, 인디밴드에 열광하고 지적이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캣에게 빠져든다. 캣의 마음도 점점 기운다. “그중에서도 제일 싫은 건 당신이 싫지 않은 거예요. 하나도, 정말 하나도 좋은 게 없어요”란 캣의 명대사와, 패트릭이 운동장에서 관리인을 요리조리 피하며 “Can’t take my eyes off you”를 부르는 장면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하이스쿨 로맨스. 아, 패트릭의 이 고백 장면은 절대 따라 하지 말 것. 오로지 히스 레저라 가능했으니까.
<다운 위드 러브>
Down with love ㅣ 2003 ㅣ 감독 페이튼 리드 ㅣ 출연 르네 젤위거, 이완 맥그리거, 사라 폴슨
앞서 소개한 영화가 여성판 ‘말괄량이 길들이기’라면, 이번엔 남성 버전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다. 여자를 하룻밤 즐길 상대로만 치부하던 바람둥이 인기 칼럼니스트 ‘캐처 블락’(이완 맥그리거)은 여성들에게 “사랑을 거부하고, 남자에게 종속되길 거부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책 <다운 위드 러브>로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바바라 노박’(르네 젤위거)을 무너뜨릴 계획을 세운다. 순진한 우주비행사 지프 마틴 소령으로 변신, 노박을 사로잡아 그가 사랑과 결혼을 부르짖게 만든 후 폭로 기사를 쓰려는 음험한 프로젝트에 돌입한 것. 그러나 캐처는 폭로 기사를 핑계로 노박과 브로드웨이와 재즈 클럽을 오가며 데이트를 하다가 정작 자신이 완전히 노박에게 빠져버리고 만다. 노박이 사랑을 외치더라도 섣불리 실망하지 말자. 사실은 모두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움직이고 있으니까. 1960년대 뉴욕 거리와 아파트, 레스토랑, 드레스와 턱시도와 함께 주연 배우들의 리즈 시절을 보는 즐거움은 보너스. 레트로 스타일의 ‘밀당’에 흠뻑 빠져보자.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He’s not just into you ㅣ 2009 ㅣ 감독 켄 콰피스 ㅣ 출연 지니퍼 굿윈, 벤 애플렉, 제니퍼 애니스톤, 스칼렛 요한슨
소개팅한 남자와 기분 좋게 헤어진 ‘지지’(지니퍼 굿윈). 남자의 전화를 기다리지만, 전화는 오지 않는다. 지지의 다정한 여자친구들은 연락을 기다리는 그에게 남자에게 뭔가 사정이 있을 거라고, 꼭 전화가 올 거라며 위로한다. 그러나 지지의 소개팅과 기다림을 지켜본 바의 매니저이자 연애에서 ‘선수’라 자처하는 ‘알렉스’(저스틴 롱)의 생각은 다르다. 소개팅남은 전화하지 않을 것인데 이유는 단 하나,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기 때문. 그때부터 지지는 알렉스에게 데이트에 대한 시시콜콜한 것들을 상담하고, 알렉스는 '귀여운 강아지' 돌보듯 지지에게 친밀한 감정을 갖게 된다. 친구로 시작한 두 남녀가 결국 연인이 된다는 결말이 뻔해 보이지만, 지금 당장 내게 꼭 맞는 짝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는 새겨둘 만하다. 아무리 뻔하다 해도 말이다.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Music and lyrics ㅣ 2007 ㅣ 감독 마크 로렌스 ㅣ 출연 드류 베리모어, 휴 그랜트
하나부터 열까지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던 두 사람이 아웅다웅 다투다가 정이 쌓이고, 결국 사랑에 빠져 버리는,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을 밟는 영화. 이젠 한물간 톱스타로 술에 절어 지내는 ‘알렉스’(휴 그랜트)는 현재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디바에게 듀엣 제안을 받는다. 하지만 작사에 영 재능이 없는 그는, 우연히 화초를 돌보러 오는 수다쟁이 ‘소피’(드류 베리모어)가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함께 작업하게 된다. 믿었던 동료에게 배신당하고 2류로 전락한 왕년의 스타, 사랑했던 사람이 실은 유부남에다 자기를 이용하기만 했다는 사실을 알고 꿈을 포기하려 했던 작가가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 연인이 되어가는 과정만큼 흥미롭다. 달콤한 노래는 덤이다. 가사도 예쁘다. “너무 오랫동안 외로웠”고 “과거에 갇힌 채 도저히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