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포커스 기업] ‘안경은 왜 아이폰보다 비쌀까?’ 안경 유통 혁신 일으킨 ‘와비파커’ - 조선일보

혁신적인 유통 시스템으로 대기업 독과점 시장에 반기 들어창업 5년 만에 매출 1억 달러, 기업가치 12억 달러애플∙구글 제치고 혁신기업 1위로 선정신개념 1+1 기부로 사회적 책임에도 앞장서
와비파커는 혁신적인 유통 시스템으로 대기업 독과점이던 안경시장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와비파커(Warby Parker)는 펜실베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 동창생 네 명이 2010년 창업한 안경 유통업체다. 이들이 안경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안경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 이렇게 시작한 와비파커는 5년 후 미국 경영전문지 패스트컴퍼니(Fast Company)가 선정한 가장 혁신적인 기업에서 애플과 구글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패스트컴퍼니는 선정 이유로 “수백 년간 변화가 없던 안경 업계의 판도를 바꾼 점”을 들었다.
◆ 20달러 했던 레이밴이 7배 이상 가격 뛴 이유
와비파커는 창립 첫해 2만 개의 안경을 판 데 이어 2013년에는 25만 개, 2015년엔 100만 개 이상을 팔아 연 매출 1억 달러를 돌파했다. 같은 해 4월 기업가치는 12억 달러를 넘어, 기업가치가 10억 달러를 넘는 스타트업인 유니콘 반열에 올랐다. 올해는 2억5천만 달러의 매출을 거둘 것으로 추정된다. 대체 무엇이 이 안경회사를 특별하게 만든 걸까?
“안경은 왜 아이폰보다 비쌀까?” 창업자 중 한 명인 데이브 길보아(Dave Gilboa)는 대학원 재학 시절 해외 배낭여행을 하던 중 안경을 잃어버린다. 그 안경의 가격은 700달러. 안경값이 부담스러웠던 그는 한 학기를 안경 없이 지내면서 안경 가격에 의문을 품게 됐다. 거의 천 년 동안 인간의 필수품이었고, 할아버지가 안경을 쓴 시절부터 모양이 크게 바뀌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복잡한 스마트폰보다 비싼 걸까?
알고 보니 미국의 안경 시장은 이탈리아 안경업체인 룩소티카(Luxottica)가 80%를 장악하고 있었다. 레이밴, 오클리 등 유명 안경을 비롯해 샤넬, 프라다 같은 명품 안경테와 선글라스가 모두 룩소티카에서 만들어졌다. 이 회사는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판매가를 높였다. 레이밴의 경우 20달러에 불과했던 안경이 1999년 룩소티카가 인수한 후 150달러로 판매가가 7배 이상 뛰었다.
외벽의 일러스트가 인상적인 렉싱턴 매장
안경 시장의 기형적인 구조를 발견한 길보아는 친구들과 함께 와비파커를 창업했다. 와비파커는 온라인 직접 판매를 통해 유통 단계를 줄이고 가격을 기존의 5분의 1수준인 95달러로 낮췄다. 또 ‘안경은 써봐야 한다’는 이유로 온라인 구매를 꺼리는 소비자를 위해 시험착용(Home Try-on) 서비스를 했다.
◆ 론칭 48시간 만에 2000건 주문, 3주 만에 첫해 판매 목표 달성
주문과정은 3단계로 이뤄진다. 와비파커 홈페이지에서 착용하고 싶은 안경 5개를 고르면 샘플이 집으로 배송된다. 고객은 5일간 안경을 써본 뒤 와비파커로 반송한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안경을 고르고 자신의 시력과 눈 사이 거리를 홈페이지에 입력하면, 2주 뒤 맞춤 제작된 안경을 받을 수 있다. 모든 배송료는 회사가 부담한다.
획기적인 안경 구매 방식에 젊은 고객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와비파커는 2010년 론칭 당시 48시간 만에 2000건의 주문을 받았고, 3주 만에 첫해 판매 목표를 달성했다.
와비파커는 혁신적인 유통 시스템으로 미국 안경 산업의 구조를 바꿔 놓았다. 여기엔 치밀한 브랜딩 전략도 한몫했다. 창업자들은 단지 저렴한 가격이 아닌, 브랜딩이 대기업의 독점 구조를 이길 힘이라고 생각했다.
다섯 가지 안경을 5일간 착용해보고 구매를 결정하는 ‘Home Try-on’ 서비스를 통해 온라인 쇼핑의 한계를 해결했다.
창업자들은 브랜드 명을 짓기 위해 무려 1500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신선하고 호기심이 느껴지고, 유쾌한 느낌의 이름을 찾기 위해 장장 6개월의 시간을 투자했다.
◆ 철저한 브랜딩으로 대기업 독과점 맞서
결국 잭 커루액(Jack Kerouac)의 미발표 소설 속 주인공 와비 페퍼와 잭 파커의 이름을 따 와비파커라 이름을 지었다. 푸른색의 로고는 갈라파고스섬에 사는 ‘푸른발부비(blue-footed boobies)’라는 새의 발에서 따왔다.
95달러라는 가격도 원가를 기준으로 결정된 게 아니다. 자체조사 결과 소비자들은 100달러를 넘으면 비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창업자들은 99달러로 가격을 정하면 ‘싸구려’나 ‘할인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95라는 숫자가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미지 때문에 4달러를 포기한 것이다.
와비파커는 완벽한 브랜딩을 위해 사내에 ‘와블스(Warbles)’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동료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직원이라면 누구나 필요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론 바인더(Lon Binder) 와비파커 최고기술경영자(CTO)는 “공동 CEO인 닐 블루멘탈(Neil Blumenthal)과 데이브 길보아는 정말 뛰어난 사람이다. 하지만 200여 명의 직원을 합한 것만큼 뛰어나지는 않다”라고 말한 바 있다.
◆ 고객을 홍보대사로, 안경 쓴 모습 SNS에 올리도록 장려
와비파커는 제품단가를 낮추기 위해 마케팅 비용을 과도하게 쓰지 않는다. 대신 고객들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콘텐츠(UGC∙User Generated Contents)에 주력해 가능한 많은 고객이 자신의 안경을 쓴 모습을 찍어 SNS에 올리도록 장려했다. 회사측은 #WarbyHomeTryOne이나 #WarbyParker라는 해시태그를 올린 포스팅에 일일이 감사 댓글을 달았고, 고객들은 이를 진정성 있게 평가했다. 그리고 더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와비파커의 제품을 홍보했다.
와비파커 고객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들
고객서비스는 와비파커의 최우선 가치이자 마케팅의 일환이다. 일례로 한 고객이 안경을 써보기 위해 매장에 방문했는데, 마침 차량을 도둑맞아 기분이 안 좋은 상태였다. 매장 직원들은 고객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며칠 후 외식 상품권과 편지 한 통을 보냈다. 감동한 고객은 이를 SNS에 공개했고, 와비파커는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봤다. 와비파커의 NPS(Net Promoter Score∙순수 고객 추천 지수) 지수는 84 정도로, 애플과 비슷한 수준이다.
2013년부터는 오프라인 매장을 열면서 고객과의 접점을 넓혔다. 현재 57개의 매장을 개점했고, 올해 말까지 매장 수를 20여 개 더 늘릴 예정이다. 보통의 기업들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시작해 온라인으로 확장하는 것과는 거꾸로 간 것이다. 닐 블루멘털 공동 CEO는 "향후 오프라인 매장을 800~1000개까지 늘리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 모든 사람은 볼 권리가 있다… 신개념 1+1 기부
와비파커는 안경을 하나 팔 때마다 추가로 한 개의 금액을 저개발 국가에 기부하는 ‘Buy a pair, give a pair’를 실시하고 있다. 신발 한 켤레를 사면 한 켤레를 나누는 탐스(Toms)의 ‘One for One’ 전략과 비슷한 개념이다.
와비파커의 공동 CEO 닐 블루멘털(왼쪽)과 데이브 길보아
와비파커는 전세계에 안경을 구매하지 못하는 저소득층이 7억 명에 달하고, 이들에게 안경을 기증할 경우 생산성이 35% 향상된다고 보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비영리단체 비전스프링(Vison Spring)과 협력해 안경 한 개가 팔릴 때마다 안경 한 개를 개발도상국으로 할당한다. 주목할 부분은 단순 제품 기부가 아니라, 시력검사 기술과 안경판매 방법을 전수해 직접 팔도록 한 것이다.
기부를 받는 사람은 직접 안경을 팔아 생활력을 기를 수 있고, 지역민들의 취향이 반영된 안경도 제작할 수 있다. 와비파커는 이 안경을 ‘끝내주는(incredible)’ 안경이라고 부른다. 기부를 받는 사람도, 구매하는 사람도 모두 멋진 안경을 쓸 권리가 있다는 것이 와비파커의 메시지. 이런 방식으로 지금까지 200만 쌍이 넘는 안경을 배포했다.
닐 블루멘털 공동 CEO는 “소비자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책임감 있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비영리단체 비전스프링과 파트너십을 맺고 안경을 제공하고 있다. 아직 상장하지 않았지만, IR 자료를 공개한 것도 투명한 경영을 보여주려는 노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