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과 마트에서 호빵 찜기가 사라지고 있다. 대신 이번 겨울에는 집에서 호빵을 낱개로 쪄 먹는 ‘1인용 호빵 찜기’가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10월 삼립호빵이 선보인 1인용 호빵 찜기는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출시 1시간이 안 되어 2만개가 ‘완판’됐다.
2020~2021년 시즌 삼립호빵이 출시한 1인용 호빵 찜기 ‘호찜이’. 카카오 선물하기에 이어 출시된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수 분 만에 품절됐다. 판매가의 3배가 넘는 4만원~5만원대에 중고마켓에서 거래되기도 했다. [사진 SPC삼립]
삼립호빵은 찜기 모양 가습기 굿즈, 예능 프로그램 〈신서유기〉와의 컬래버레이션 등 재미와 스토리를 입힌 마케팅을 하고 있다. 이번 시즌에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하이드아웃과 협업해 플리스 호빵 쿠션, 재킷 등을 출시했다. 새로운 시도는 매출 상승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삼립호빵은 매출 1100억원, 누적 판매량 60억개를 기록했다. 1971년 출시 이래 최대 실적이다.
삼립호빵의 마케팅에 호응을 보낸 건 기존의 호빵 소비층인 4050세대가 아닌 2030세대다. 50년 넘은 호빵 브랜드가 주요 구매층이 아닌 MZ세대를 대상으로 마케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호빵’ 하면 많은 사람들이 추억을 떠올리지만, 추억에만 의존하는 브랜드는 시간이 갈수록 잊혀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랜 시간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들려면, 호빵에 대한 추억이 많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도 말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SPC삼립 조준형 브랜드 커뮤니케이션팀장의 말이다. 그는 20년 넘게 IT·유통·패션·식품 등 다양한 업계에서 활동해 온 브랜딩 디렉터다. 1년 전 삼립으로 자리를 옮겨, 삼립호빵의 브랜딩을 담당하고 있다. 조 팀장은 중앙일보 지식플랫폼 ‘폴인’ 온라인 세미나에 연사로 참석한다. 삼립호빵의 브랜딩 과정에서 발견한 MZ세대의 특징과 인사이트를 공유할 예정이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시중에 판매되는 호빵 10개 중 8개는 삼립호빵이라고 들었습니다. 안정적인 수입이 확보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소비층인 MZ세대 대상 마케팅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첫 번째는 온라인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하는 주체가 MZ세대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보고 즐기는 콘텐츠는 다른 세대로 확산될 거라 판단했죠.두 번째 이유가 더욱 중요한데요. 브랜드의 미래와 지속성을 위해서입니다. 현재는 비교적 탄탄한 소비층과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지만, 점차 호빵에 대한 선호도나 관여도가 높지 않은 세대가 시장의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들에게 기억되지 못하는 브랜드는 살아남기 어려워질 겁니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세대이기에 일반화하기는 어렵습니다만, 크게 두 가지 특징이 다른 세대에 비해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끊임없이 새로운 재미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온라인 상에서 화제되는 ‘밈(meme)’이나 ‘짤’은 주기가 매우 짧습니다. 인기를 끌다가도 금세 다른 밈이나 짤로 교체되죠. 두 번째는 인정욕구가 강하다는 점입니다. 한정판 굿즈, SNS에서 화제된 제품이나 장소에 열광하는 이유죠. 누구보다 빨리 사거나 경험했다는 것을 인증해, 타인의 인정을 받을 때 만족감을 얻습니다.
SNS에서 화제를 모은 브랜드가 빠르게 잊혀지는 사례도 많습니다. 브랜드의 지속성을 고려하면 재미와 화제성만으로는 한계가 있지 않나요.
재미와 화제성으로 브랜드를 알릴 수는 있지만, 브랜드를 계속해서 찾게 하는 힘은 품질에서 나옵니다. 굿즈에 이끌려 호빵을 샀더라도 호빵 맛이 좋았다면 다시 구매하게 되죠. 호빵 맛이 늘 비슷한 것 같지만, 매일 제품을 개선하고 있습니다. 반죽의 두께나 찰기, 쫄깃함 등이 시즌마다 조금씩 바뀌죠. 1인용 호빵 찜기 아이디어 역시 ‘집에서도 촉촉한 호빵을 맛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에서 나왔습니다. 이 고민의 해답을 MZ세대가 좋아할 만한 콘셉트와 디자인으로 풀어낸 거죠.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미니언즈 바나나호빵’과 ‘허쉬초코호빵’ 등을 선보였습니다.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와도 협업했죠. 컬래버 파트너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첫 번째 기준은 ‘우리가 원하는 이미지를 가진 브랜드인가’입니다. 두 번째 기준은 팀워크입니다. ‘서로의 방향성을 얼마나 이해하는가’가 중요하죠. 각 브랜드가 원하는 것만 주장하면 시너지를 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1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하이드아웃’, 온라인 셀렉트숍 ‘29CM’, 홈리스 매거진 ‘빅이슈’와 동시 협업했습니다. 하이드아웃과 호빵 모양 쿠션·머플러·버킷햇을 만들고, 29CM에서 단독 판매했죠. 수익 전액은 빅이슈를 통해 기부했고요. 네 브랜드간의 컬래버였지만, 서로의 방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50주년을 맞아 『호빵책』이라는 제목의 브랜드북을 출간했습니다. 브랜드북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게 된 건가요.
국내에 50년을 넘긴 단일 브랜드는 흔치 않은데요, 아쉽게도 삼립호빵에 대한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흩어져 있는 브랜드의 기록을 한데 모아야겠다는 생각에서 『호빵책』을 만들었습니다. 21년간 브랜드 디렉터로 일하면서 ‘기록이 잘 된 브랜드는 이기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브랜드의 기록 중 트렌드에 맞는 것을 선택해, 계속해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새로운 시도를 이어나가는 가운데, 지켜나가고 싶은 삼립호빵만의 정체성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따뜻함과 포근함이라고 생각해요. 호빵은 주로 겨울에 판매되는 상품입니다. 추울 때 따뜻하고 포근한 것을 찾게 되는 건 세대를 뛰어 넘는 특징이죠.
물론 달라요. 그래서 세대별로 판매 채널에도, 마케팅 방식에도 차이를 두죠. 20대도, 60대도 삼립호빵을 떠올리며 그들만의 ‘따뜻함’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조 팀장은 “변하지 않는 것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고객, 콘텐츠, 매체, 유통 채널 등에 변화를 준다는 의미다. 그는 폴인 온라인 세미나 〈50살 삼립호빵, MZ와 ‘노는’ 브랜드된 비결〉에서 MZ세대를 사로 잡는 브랜딩 경험을 공유한다. 세미나는 3월 17일 오후 8시에 열리며, 폴인멤버십 회원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 신청은 폴인 웹페이지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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